작성일 : 23-11-09 14:51
[178호] 시선 둘 - 만산홍엽(滿山紅葉)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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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산홍엽(滿山紅葉)

이영환


울산에서 군산을 오갈 때 여러 경로를 거치긴 하지만 대구를 경유하여 대구-광주 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함양에서 빠져 다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거쳐 장수에 이르면 장수-익산 고속도로를 따라가다 완주에서 내려 군산까지 뻗어있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이용하면 가장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네비가 남해고속도로를 경유하는 코스로 안내해서 네비가 가르쳐주는 길을 따라 이동했었는데, 어느 날 언양에서 부산으로 가야하는 것을 딴 생각하다 대구로 향했고 다른 때보다 오히려 약 40여분이 단축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두 코스를 대 여섯 차례 왕복하면서 비교해 보니 확실하게 대구 경유하는 쪽이 시간이 단축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일 때문에 가끔 군산을 가곤 하는데, 갈 때는 못 느끼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느긋해진다. 특히 요즘같이 양쪽으로 펼쳐지는 단풍든 산들의 아름다운 정취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와 묘하게 매칭되어 이순을 맞은 나에게도 아름다움과 더불어 마지막 화려함을 뽐내는 것 같아 안타까움도 느끼게 한다.
작년 이맘때도 경주에 있는 ‘왕의 길’을 걸었었는데 곳곳에 있는 단풍이 화려하게 단장을 하고 있어 산길을 걷는 피곤함을 달래 주었던 기억이 난다.

단풍이 드는 이유는 가을철에 기온이 내려가면서 나뭇잎의 수분과 영양소의 통로가 막혀 생장호르몬이 멈추고 초록색에 가려있던 색상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또한 우리 삶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혹자는 백세시대에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말하지만 육체적 노동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언감생심 와 닿지 않는다.
나이 앞 숫자가 5와 6이 확연히 달라 어제와 오늘을 대하는 느낌이 다르고 일의 처리 속도도 차이가 난다.
아마도 신체 호르몬이 늙어 가거나 죽어 가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적당한 운동과 건강관리로 어느 정도는 늙어가는 속도를 늦출 수도 있겠지만 자연의 섭리는 쇠락해 가는 신체의 흐름을 막을 수 없어 보인다.
간혹 몸 관리를 잘하여 나이를 거꾸로 먹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자연스럽게 단풍이 들어간다.

그러나 신체의 나이가 들어 늙어 가더라도 생각 자체도 늙어 소통이 되지 않는 꼰대가 되어서는 곤란하겠다.
인생의 경륜과 지혜가 녹아 젊은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인생 항로를 알려주고 삶의 철학을 제시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아량을 머금고 늙어가야 하겠다. 가수 노사연의 곡 ‘바램’ 가사 중에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처럼.

생장호르몬의 활동이 멈추어 몸은 비록 늙어 가더라도 나이보다 젊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오늘도 바람에 이는 오동잎이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들려준다.
만산홍엽을 보며 마음을 정화해야 하겠다.

※ 이영환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공동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