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8-31 15:39
[176호] 시선 하나 - 학생들이 쏘아 올린 인권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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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사무국
조회 :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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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쏘아 올린 인권의 불꽃
손현정
지난 7월 19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다 나의 귀에 쏙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다.
“전주 한 초등학생들의 제안에 주변 상인들이 화답하다”
“어? 뭐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뉴스를 보게 되었다. 전주 풍남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이 ‘약물 예방 교육’에서 ‘마약’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들었고 마약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학교 주변을 보니 ‘마약’ 이름이 붙은 가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약○○’이라는 광고 문구나 상호가 자칫 마약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하고, 외국인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 학생들이 주변 상인분들께 마약 대신 ‘소문난’, ‘꿀맛’, ‘원조’ 같은 예쁜 상호로 바꿔서 대박 나셨으면 하는 손편지를 작성하고 전달하였고 이 편지를 받은 상인들이 간판을 바꿨다는 소식이었다.
유명연예인들이 마약으로 구속되고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선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억력과 집중력에 좋은 음료라며 필로폰 음료를 배포한 사건, 학교 앞에서도 학생들에게 시음행사를 통해 마약 음료를 나누어 주는 사건 등을 접하면서 우리는 ‘아이구, 쯧쯧!’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몰래 먹이는 저! 저! xxx’ 등이라며 흥분하며 유통업자들을 나무라는 데서 멈추었다. 그리고 색다른 경험, 자극적인 것을 찾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마약 콘셉트 카페·술집이 운영되고 있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엔 대마초 조화가 몽환적인 보라색 조명을 받고 곳곳에 장식되어서 ‘대마리카노’(대마+아메리카노)와 ‘대마씨앗 케이크’를 판매하지만, 카페 직원은 환각 성분이 제거된 햄프씨드(대마씨앗)를 이용했다며 “합법이고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또 다른 서울 종로구의 한 맥줏집은 ‘누구나 꿈꿔왔던 그 맛, 경험하라, 합법적으로’라는 홍보 문구를 내세워 ‘대마초 맥주’를 소개하며 노골적인 마약 마케팅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풍남초등학교 학생들은 단어가 주는 위험성을 인지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었다는 것과 함께 학생들의 제안이 적힌 손편지를 받은 상인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명칭 변경에 자발적으로 동참하였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지방자치단체는 식품 또는 음식점의 명칭에 ‘마약’이라는 표현의 상업적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인권 수업을 나갈 때면 학생들에게 인권감수성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다양한 자극과 사건 속에서 인권적 요소를 알아차리는 감각 또는 촉에 행동까지 더해지는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실제 나의 인권감수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였다.
또한, 경남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교에서도 SPC불매에 동참하여 급식소에서 나누어 주는 아이스크림이 베스킨라빈스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학생의 건의로 학교급식이 바뀌기도 하였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매점에 있는 빵을 사 먹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지만 학교에서 이벤트성으로 제공하는 음식은 공적인 성격이 크다고 봅니다. 따라서 2022년 10월, 20대 노동자가 소스배합 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뿐 아니라 손가락 절단 사고 등 잦은 상해사고가 발생하였지만, SPC그룹의 미흡한 조치와 안전장치 부족으로 이러한 사건·사고가 늘 있어왔다고 합니다. 이런 SPC그룹에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도 포함되며 불매는 강요해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공적으로 무언가 하는 자리에서는 위 기업 같은 블랙기업은 이용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건의를 하였고 학교 측은 학생의 불매운동 건의에 관한 판단을 위해 베스킨라빈스의 SPL과 파리바게트에 회사 차원의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는지 문의했지만 적절한 답변을 받지 못해 급식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한 학생의 건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측에서는 그 건의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였고 기업 측의 입장까지 고려하여 학교급식의 SPC 계열제품 불매운동 동참을 이끌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전주 풍남초등학교 학생들은 자신들이 바꿀 수 있을까? 기대 반 의심 반이었는데 손편지가 좋은 결과로 이어져 너무 뿌듯하다고 하였고 경남의 고등학생은 지난 “8월 8일 SPC계열 샤니의 성남공장에서 50대 노동자의 끼임 사망사고가 또 발생한 소식을 들었을 때, 만약 자신이 그때 불매운동 건의를 안 했다면 또다시 발생한 이번 끼임 사망사고에 대해 죄책감이 들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인권은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누리는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한 권리라고 한다. 누구나 누리기 위해 우리는 연대를 이야기 한다. 그 연대를 나는 풍남초등학교 학생과 주변 상인, 경남의 고등학생과 학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연대를 투쟁의 한 모습으로 보며 대립을 위한 대립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연대는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나와 다름이 차별과 대립이 아닌 우리가 함께 더 살기 좋은 곳을 만들기 위한 것임을 오늘 다시 한번 더 마음에 새겨본다. 전주의 풍남초등학교 학생들과 경남의 한 고등학생들이 쏘아 올린 이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길 바래본다.
※ 손현정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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