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학교폭력’,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가해자이고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피해자인지도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2월6일 발표된 정부의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 이후 보도행태는 그동안 음지에서 숨죽여왔던 학생간의 폭력이 정부의 발표와 함께 드디어 세상에 밝혀진 듯이 그려지면서, 정부의 대책이 시기적절했음을 홍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실상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은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여 학생들을 보다 강도높게 통제하겠다는 발상뿐이다. ‘학교폭력 뿌리를 뽑겠다’는 선정적인 신문제목에서 2012 버젼 <‘범죄와의 전쟁’- 학교편>을 연상시킨다면 너무도 비약적인 상상일까?
학교폭력이란? 모두가 인지하다시피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폭력을 의미하며, 이는 단순히 학생과 학생사이의 폭력만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학교폭력이 ‘학생간 폭력’만을 문제 삼고 학교가 행하는 공적 폭력에 대해서는 유독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그동안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폭력을 학생과 학생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만으로 축소하여 학교의 구조적인 문제와 교사 학생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교묘히 은폐하기 위함이 아닐까?
‘학생간 폭력’이 발생하는 것은 경쟁교육과 억압적 훈육문화에서 발생하는 위계를 이용한 폭력의 대물림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입시경쟁이 철없이 뛰어놀아야할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 학원 저 학원 꽉짜여진 일정을 강요하고, 어린 나이에 스트레스의 한계점에 넘어서게 된 아이들은 집단따돌림과 폭력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어놓게 된다.
명령과 복종의 관계, 생활지도와 교육이라는 외피를 쓰고 오랫동안 묵인되어 왔던 ‘비가시화된 폭력’을 내버려둔 채 다만 학생간의 폭력만을 강조해서는 어떠한 해결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계점에 다다른 아이들이 보여주는 폭력성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으로, 이에 대한 해답은 오히려 단순하게 도출될 수 있다. 바로 아이들에게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이다.
실패한 교육정책을 부여잡고 아이들을 궁지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경쟁교육으로부터 아이들을 놓아줘야 한다.
결국, 바뀌어야 할 대상은 어른들이며, 어른들이 내놓은 각종 교육정책과 사회구조이다. 실패한 교육정책의 피해를 오롯이 받으면서도 선택권조차 부여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또다른 폭력에 다름아니다.
폭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소통과 협력의 학교문화를 만들자고 주장하지만, 정작 이를 가로막고 있는 학교당국과 교사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진정한 소통과 협력은 어른들의 성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117 학교폭력신고센터’로 일원화하여 그나마 실효성을 높였다는 평가나, 일진경보제, 생활기록부 기재 등 거론하기조차 부끄러운 대책이 난무하고 있다.
경찰을 위시한 공권력에 의지한 폭력근절대책은 그동안 수차례 천명하였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으며, 도리어 또 다른 폭력을 양산하였다.
학교폭력과 이별하고 아이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은 지역사회 모두의 지혜와 실천이 함께 할 때 가능하다. 교문을 넘어 인권의 문제를 공유하고자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말뿐인 성찰과 아이들만의 책임을 강조하는 대안으로는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교육을 포기할 것인가?
- 글을 써준신 박영철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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