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인권운동연대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한지 어느덧 2개월이 지났다. 연초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잡다한 일들을 정리 하느냐 정작 ‘인권’이라는 것을 소홀히 하고 있을 때쯤 한국인권재단에서 한통의 이메일이 왔다. 2월9일에 개최되는 한국인권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사무국장님의 도움으로 받게 된 초청장이었지만 초청장을 받으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그 날 이후, 회의참석 날이 다 되어 갈수록 울산을 떠나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는 사실에 설레고 한편으로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출발당일, 사무국장님, 동구의 공무원들과 회의장소인 변산 대명리조트로 아침 일찍 출발하였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였을까? 차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눈을 떠보니 차 밖의 세상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변산반도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울산에서 보기 힘든 새하얀 풍경을 보니 앞으로의 회의가 왠지 모르게 긍정적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착 후 변산 리조트에서 점심을 먹고 나니 곧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장 안에는 이미 대학교수, 풀뿌리운동가, 인권활동가 등 각종 단체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적당히 앉을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엉거주춤 서성이다 구석의 빈자리에 앉아 회의진행에 참여하였다. 다들 연륜과 내공이 느껴져 이제 시작하는 나는 너무나 작은 존재인 것 같았다.
한국인권회의의 개회식이 끝나고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이 오프닝 시간에는 박영철 사무국장님의 발제문도 포함되어있어 사무국장님께서는 무대 위에 올라가셨다. 사무국장님을 비롯한 몇몇 분들의 인권에 관한 전반적인이야기를 시작으로 2012년 한국인권회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왜 ‘인권’이란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점차 부각되고 있는지 간단하지만 인권이라는 큰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순서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권관련 현황에 대한 토론이었다. 이 토론에서 나는 처음으로 인권이라는 주제 안에서도 다양한 이견이 나오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하였다. 다들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조례와 이를 비롯한 많은 사업들이 추진 중인 이지만 정작 이러한 활동이 너무 형식적이라는 것에 비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인권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여서 더욱 신빙성 있게 들렸다. 인권증진활동이나 인권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권조례가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다음 순서인 분과 토론회에 참석하였다. 분과 토론은 토론회에서 나온 주제들을 가지고 원하는 세부 분반에 들어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소규모 토론회이다. 나는 이 분과 토론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질문도 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첫날의 토론을 마치고 저녁에는 보다 친해지자는 의미로 친교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시간들 또한 나에게는 단순한 친교의 시간이 아닌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논문의 저자로서만 알아왔던 교수님들을 직접보고 잠깐이지만 이야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친교의 시간마저 끝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나의 숙소에는 나를 포함하여 4명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명이 외국인이 있었다. 어떻게 영어로 대화할지 조금 난감했다. 하지만 그 외국인은 나를 보며 무리 없이 우리말을 하는 바람에 내가 준비한 영어인사말들은 필요가 없게 되었다.
변산에서 두 번째 날이 밝아왔다. 힘겹게 숙소에서 나와 아침부터 회의에 참석하였다. 아침회의의 주제는 해외사례에 관한 것이었다. 과연 외국의 여러 나라 혹은 도시들은 어떻게 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일본의 사카이시에서의 인권교육과 소수자들을 위한 활동, 캐나다 몬트리올에서의 인권선언, 미국의 뉴욕과 워싱턴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의 과거청산 내용이 녹아있는 인권활동 등의 사례를 알게 되었다. 역시 인권은 보편적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 문화권의 특색이 고려되고 반영되어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밖에도 풀뿌리활동가들의 의견, 공무원들의 의견들을 들을 수 있는 토론회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둘째 날의 하이라이트는 서울시 성북구청장님과 울산시 동구청장님의 인권도시에 관한 발표였다. 각 구청장님들은 자신의 관할 구역에서의 인권증진을 위한 계획들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였다. 특히, 동구의 경우는 비정규직문제를 포함한 것이 다른 지역의 것들과 비교되는 것이었다. 발표 후 사람들은 이러한 계획이 너무 형식화에 치우칠 것을 우려 섞은 목소리와 날카로운 질문들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인권증진을 위한 구청장님들의 의지를 높게 평가 하며 당부의 말을 하며 둘째 날의 마지막시간 또한 끝이 났다.
한국인권회의의 마지막 날, 전국 각지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고 하실 말씀들이 너무 많으셨는지 전날 다들 비공식적으로 삼사오오 모여 밤새 토론을 하셨다. 그래서 인지 사람들의 얼굴에는 약간의 피곤한 모습들이 보였다. 하지만 공식회의를 안 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마지막 날의 마지막 일정은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의 인권과제였다. 앞으로 어떠한 사람들이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되건 인권문제와는 떨어질 수 없는 것이며 더 이상의 퇴보가 아닌 전진을 위한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인권은 어느 수준일까? 사람들마다 인권증진에 관한 이견은 없지만 실현방법과 현재를 진단하는 방법에 있어서 이견이 존재한다. 과연 어느 누구의 말이 조금 더 우리나라에 알맞은 말일까? 나는 이번 회의에 참석하면서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인지를 판단하기보다 이렇게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 되어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된 것에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느낀 만큼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 글을 써주신 김준현은 현재 울산인권운동연대의 장기인턴쉽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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