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1-15 17:16
[50호] 여는 글 - 모두는 안녕하신가요?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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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는 안녕하신가요 ?


최민식 l 울산인권운동연대 상임대표


경쟁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이 꼴이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데, 해결책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막막한가요? 상대가 막강한 때문이겠지요. 경쟁 지상주의자들이 생겨날 만큼 강력해진 ‘대한민국표 경쟁’은 필연 그 스스로 몰락의 길을 가겠지만 시간이 문제입니다. 그 시간을 당기는 일에 나서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느 날 장자가 출타했다 돌아와 보니 집에 큰 불이 나고 있었습니다. 집안에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불이 났다고 아무리 소리를 처도 노는 데만 정신이 팔린 아이들이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장자는 계책을 내어, 빨리 나오면 사슴의 수레, 양의 수레, 소의 수레를 준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신기한 장난감이 있다는 그 말에 아이들은 불길 속을 헤쳐 나왔습니다. 장자는 기뻐서 이 세 가지 수레보다 더 좋은 온갖 보물로 만들어진 대백우거(大白牛車)를 주었습니다.
법화경 비유품의 삼거(三車)화택(火宅)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욕심(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痴) 삼독에서 헤매는 말세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불길에 휩싸인 집안에서 웃고 떠들고 하는 우리들 얘기입니다. 중생의 삶 자체가 아귀다툼이지만 오늘의 우리는 ‘아귀다툼’에 내몰려 즐기고 있습니다. 내몰고 있는 자가 누구인 지, 무엇인 지, 왜 그런 지 도 모른 체 제살 뜯어먹는 꼬시레기 신세입니다.
‘다툼’을 대상화 하면 ‘경쟁’입니다. 누구는 경쟁은 생존의 방식이고 원리라고 우겨댑니다. 자연의 섭리로 경쟁은 발전의 윤활유임에 틀림없지만 조화를 전제로 합니다. 한마디로 윈-윈을 전제로 할 때 ‘경쟁’은 선의가 되는 것입니다.

위 이야기 속 장자의 이런 거짓말을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물론 부처님은 선의의 거짓말도 자주 하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방편의 가르침으로 선의의 거짓말이 허용될 뿐입니다.
선의(善意)의 경쟁, 선의의 거짓말에서 선의는 착할 선(善) 옳을 의(意), 즉 착한 의도라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선의’가 수식하는 경쟁과 거짓말은 본래 나쁜·부정의 뜻으로 쓰입니다.
요즘 세상은 생존경쟁 그 자체입니다. 내가 살기위해 남을 밟고 서야합니다. '승자'의 발밑으로 내쳐진 다른 이들은 이 사회와의 공존을 거부당합니다. 그 누군가가 정해놓은 가이드라인 안을 들어서기 위해 그 안에서 1등이 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세상인 것입니다.
경제학 용어로 경쟁은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지는 경제 환경을 나타내는 말로서 독점에 대립하여 쓰입니다. 교육학 용어로 경쟁은 학습에 대한 동기를 촉발시키는 요인의 하나로 교육상의 방편으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 ‘경쟁’은 제한적 허용만이 긍정성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교육학 사전에 교육경쟁은 있어도 경쟁교육이란 단어가 없는 이유입니다.
무한경쟁시대에 어떻게 이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아귀다툼’에서 어떻게든 승리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아귀다툼’은 이겨도 이기는 것이 아니며, 더 더욱 그 다툼에 빠진다고 합니다. 승리에 목말라하지 말고 진리를 쫓아 갈증을 풀어 봄이 어떨 런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