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바보들
흔히 우리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각기 다르기도 하고, 함께 대화를 나눈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화자와 청자가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 문-안 단일화논의 과정에서 ‘국회의원 정수 조정’에 대한 해석도 서로 달라 당황스러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보는 것 역시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객관적이지도 않고 과학적이지도 않다. 주관적으로 자신의 범위 내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현상을 이해한다.
정치적 도덕적 판단 앞에서는 더욱 심하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같은 사실(fact)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똑똑한 바보들’에서는 이러한 오류의 원인을 심리학적 근거인 “확증 편향(인지부조화. 자기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과 “동기화된 추론(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정보를 찾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외면하며 사실이 믿음과 어긋나면 믿음이 아니라 사실을 버리는 경향)”에서 찾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당파적, 종교적 확신이 동기화된 추론의 주요 동인일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확신은 너무나 깊이 자리 잡은 나머지 개인적 정체성의 핵심부분을 구성하며, 그 정체성에 방어벽을 들러주고,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집단에 연결시켜주기 때문이다. 그 확신들은 팩트, 논리, 이성이 우리 안으로 뚫고 들어올 수 없게 만들 수도 있다.”(59쪽)
이러한 모습은 보수. 진보를 떠나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 않을까?
자신을 진보주의자라고 밝힌 저자는 결론에서 보수주의자와 논쟁해서 그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바뀌지 않고 바꾸는 걸 좋아하지 않는 보수주의자를 변화시키려고 애쓸 시간에 차라리 유연하고 변화하기 쉬운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의 장점을 수용해서 더 나은, 더 통합적인 진보주의자가 되는 게 낫다고 말한다.
대선정국이다. 우리는 지난 2007년 12월 BBK 동영상과 명함 앞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던 MB 지지자들을 보았다. 반면 야권은 정후보의 ‘노인발언’ 한방에 이탈표가 주루루 흘러내렸다. 어쩌면 올 12월에도 5년 전 모습 그대로 나타날지 모르겠다. 그리고 보수주의자들의 절대적 믿음과 철옹성 같은 방어벽에 스스로 움츠려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내 안에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음을 본다. 서로 다른 것들을 화해시키는 방법은 어쩌면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화해시키려고 기를 쓰거나 잘못과 오류를 지적하며 고치도록 애쓰기보다 합리화에 더 비중을 둔다. 다양한 근거(?)들을 들이대며......
“스스로 추론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어쩌면 우리는 합리화하는 중일 수도 있다.(중략) 우리는 과학자 놀이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변호사 놀이를 하는 중일 수도 있다.”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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