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9-10 14:49
[48호] 회원글 - 인간답게 산다는 것②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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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완 l 울산인권운동연대 공동대표


“무엇보다 가난해야 한다. 강요된 가난은 죄악이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지만 자발적으로 선택한 가난은 바로 예수의 모습이다. 그것에 의심이 없다. 이젠 버리는 게 어렵지 않고 갖지 않는 게 편안하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버틸 수 있다고 믿고 웬만한 건 걱정을 안 한다. 아이들 과외도 못 시키지만 과외를 시키는 게 비정상인 거고 설사 아이들이 대학을 못 가고 가난한 기층 민중으로 살더라도 전혀 걔들한테 불행한 게 아니라고 믿는다. 도시 빈민이나 농민 노동자의 삶 속에는 지식인들이나 중산층들의 삶이 가질 수 없는 게 있다.”

제 얘기는 아니고요, 김동원이라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말입니다 (김규항, 《나는 왜 불온한가》 중 <가치관>이라는 글에서 인터뷰를 따온 부분).

지난 호의 글에서 자유의지를 잘 살려야 한다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를 했는데 굳이 말을 좀 더 얹어 보자면, 김훈의 <회상>과 같은 글에서 짐승과는 다른 삶을 답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의 운명이 약육강식이라면 우리는 인간이 아닙니다. 내가 약자로서 살기 위해 나보다 센 놈한테 내 살점을 먹이로 내주어야만 한다면 또 그걸 뜯어먹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고 개돼지나 마찬가지입니다. 금수축생이나 버러지와 같은 것이지요.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름에 값할 수 없는 것이죠.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거기에 승복할 수 없어요. 거기에 승복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인간이기 때문에 거기에 끝없이 또 짓밟힐 수밖에 없습니다. 짓밟혀가면서 또 끝없이 저항하는 것이죠.”(김훈, 《바다의 기별》).

이렇게 짐승과는 구별되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으로 사는 최선의 방법은 예수님처럼, 아니면 김동원 감독처럼 가난하게 사는 것이겠지만,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감히 넘보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그래서 차선책을 찾아보게 되지요. 역시 책 속에 답이 있네요. 김훈의 책에는 <말과 사물>이라는 글이 있는데 하루하루를 감사해 하면서 잘 보내는 게 답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읽힙니다.

“우리는 수십만 년, 수백만 년의 시간을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루라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하니까 어떤 시간인지를 알 수가 있지요. 하루는 놀라운 것입니다. 하루라는 시간 안에 어둠이 오고 밝음이 오고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별이 뜨고 죽음처럼 잠드는 시간이 있고 또 깨어나는 부활의 시간이 있고 노동과 휴식, 절정과 맨 밑바닥이 다 있는 거죠. 하루는 사람의 한 일생과 맞먹는 시간입니다. 하루를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하루는 일생과 맞먹는 거예요. 그 안에 모든 게 다 들어 있습니다. 시간이 갖추어야 될 모든 모습이 그 안에 다 있습니다. 아무 것도 빠진 것이 없지요. 나는 저녁때가 되면 신나요. 저녁이 되어 사위가 어슴푸레해지면 신바람이 납니다. 푸른 밤이 오고 하늘에 별이 박히면 우리가 낮에 느끼던 삶의 하중들이 조금은 빠져나가서 삶이 좀 헐거워지고, 홀가분해지는 것 같죠. 그리고 하늘에 별이 뜬 걸 보면 아 이 세상에 시간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살아 있어서 저렇게 분명하게 작동하고 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