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문완 l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또 다시 콜로라도다.
우리는 마이클 무어의 에서 미국 사회의 총기 자유화 또는 애호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바로 그 옆 동네에서 이번에는 영화관을 무대로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무려 12명이 죽고 59명이 다쳤는데 그 중 11명은 중태라고 하니 사망자 수는 더 늘 전망이란다.
이런 사고를 접하고 총기에 대한 단속을 더 강화해야 하나? 미국 국민의 55%는 ‘아니’라고 답한다. 이게 이들의 자유이다. 그리고 이들의 선택을 우리는 존중해야 한다. 왜? 그들의 선택이니까. 죽은 자들에게 명복을 빌며 산다는 걸,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또 생각해 본다.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내가 읽기로는) 꽤나 치기를 벗어나지 못한, 아마추어 작가의 냄새를 풍기는 작품인데, 이 속에서 답을 찾아보자. 이 소설은 작가의 청년시절을 그린, 소위 성장소설로 볼 수 있고, 그래서 그 치기 속에서 우리의 젊었던 때를 되새겨보게 한다. 다음 구절을 보자.
정신은 말했다. 상대보다 더 힘이 세다고, 더 많이 배웠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더 우월하다고 믿는 자들이 부리는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그 오만과 폭력과 무례함을 견뎌야 한다고, 모든 오만한 자들이, 모든 무뢰배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때까지, 견디고 견뎌서, 그 견디는 힘으로 우리가 아름다워지자고, 왜냐하면 모든 추함은 모든 아름다움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동물에서 출발한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에, 동물적 본능의 시간에서 조금이라도 인간의 시간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기 때문이라고, 동물의 시간에서 인간의 시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난한 몸부림의 과정이야말로 진보의 역사라고, 정신은 힘주어 말했었다.
오늘, 저 무뢰배의 오만이 횡행할 수 있는 이 야만의 구조, 이 동물적 상황을 나는 견뎌야 한다. 저항하기 위해 견딜 것. 아름다워지기 위해 지금은 견딜 것.
동물의 시간에서 인간의 시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난한 몸부림에서 답을 찾으라는 얘기! 충분히 공감하며 사고의 지평을 좀 더 넓혀 보는 것도 또 하나의 답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자식이 행복해지도록 에너지를 쏟는 유일한 동물이다. 나머지 동물들은 자식들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데 더 열심이다”는 얘기에 주목하자. 인간 이외의 동물이 더 잘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정답은 자유의지에서 찾을 수 있다.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축복이라는 자유의지를 잘 살려 짐승보다 뛰어난 삶을 살아간다면 축복이되 그렇지 못하다면 바로 그 자유의지 때문에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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