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l 울산인권운동연대 상임대표
매서운 더위란 말이 어울리는 요즘입니다. 축축 늘어진 육신이 잠을 청해도 곤한 잠은 어디론가 사라져 그저 그리울 뿐입니다. 그런데다 올림픽 경기에 시간을 놓치면 여름밤 곤욕입니다. 이 와중에 심신의 짜증을 곱빼기로 만드는 일이 생겼습니다. 검찰과 보수언론과 울산대학교가 한 통속이 돼서 나의 신심을 괴롭힙니다.
울산지검 공안부는 "학생들로 하여금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읽도록 하면서 김일성을 찬양하고 미화하는 감상문을 제출할수록 좋은 학점을 주는 등 종북 활동을 전개한 교수를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조선일보><동아일보> 등 중앙언론과 지역언론들은 일제히 "김일성 찬양하면 A+… 비판 학생은 B학점”, "'김일성 회고록 읽고 감상문 내라' 상아탑도 종북 논란”, "'김일성 찬양해라' 대학교수 기소” 등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그러자 울산대학교는 지난 1일 교무처장과 단과대학장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 회의를 열어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자는 직위 해제할 수 있다'는 교원임용규정에 따라 이 교수를 직위해제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관계로 보면 이는 이 사회가 용인하는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법적 사회적 책임을 응당 받아야 하는 것으로 별 문제가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2년 전 공안에서 이 문제를 수사할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트로트와 아리랑을 좋아하고 막걸리를 좋아하는 이 교수님의 통일문학에 대한 열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괜한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왜 하냐며 내가 핀잔을 준 기억이 있습니다. 집요한 수사에도 별문제가 없었고, 이 교수님도 오해 살 행위를 더 이상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2년이 지난 지금 2년 전 수사 건을 이제 와서 뜬금없이 기소하는 검찰이나, 확인되지 않는 기소 내용이 너무 구체적으로 왜곡 과장하여 기사화 된 것이나, 학교 측이 즉각 직위해제 등을 보면 종북 여론몰이 공안정국에 편승한 기획 작품 냄새가 풍깁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인권단체나 좌빨들 만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엔과 국제인권단체들이 개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조차도 연례인권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국가보안법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학문의 자유, 사상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유린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코에 걸어 놓고 귀걸이라고 우겨 대고 있습니다. 언론들이 창작 하듯 혐의 내용을 왜곡하고 여론재판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해야할 이유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연유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할 악법입니다. 여론을 왜곡 호도하는 자양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의 전개과정을 보면 너무나 뚜렷해 보입니다.
법원심리가 시작되지도 않은 이 시점에 화급히 직위해제 징계를 결정한 울산대 인사위원회의 행위는 아쉬움 보다 측은함이 앞섭니다. 학문의 자유, 사상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지켜내야 할 학장들이 학자의 양심을 져버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상아탑의 근본을 망각한 채 학문을 이념이나 시류에 흔들리는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헌법 제22조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개인의 자유권적 기본권임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31조 제4항에서 규정하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 보장은 기본권의 제도적 보장입니다.
학장들이 대다수인 인사위원회의 결정은 최소한 법원 판결 이후로 미루어 져야 했습니다. 뭐에 쫓기듯 일사분란하게 직위해제의 중징계를 내리는 결정은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이 교수님의 교수 방법이나 내용에 있어 모두 동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법적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할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학문은 자유입니다. 학문은 자유로워야 합니다. 자유가 없는 것은 학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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