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9-10 14:05
[46호] 회원글 - 진로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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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l 편집위원

진 로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
앞날이 막막하다
(이정진)


정신세계 가볍기가 깃털 같고, 그래서 심각한 것을 딱 싫어하는 내가 토론 프로그램을 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토론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단지 나이가 드니 정치나 시사를 좀 알아야겠는데, 가르쳐 주는 데가 없어서였다. 혼자 신문을 보고 공부해봤자 실패할 게 뻔하고, 그래서 나름 머리를 굴린 게 토론프로를 하는 거였다. 돈 받고 하는 일이니 강제로라도 신문과 뉴스를 봐야하고, 질문지며 뭐며 쓰다보면 상식이 조금은 늘지 않겠냐 싶었다. 결과는? 지금은 택시를 타면 기사님과 신나게 정치인 욕을 할 수 있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지식과 함께 욕이 엄청 늘었다. 이건...자랑은 아니지만...아무튼 그렇다.
그리고 곧 토론을 그만 두는 지금 (이제 정치는 배울 만큼 배웠다!) 그 동안 다룬 수많은 주제 중 개인적으로 가장 심각하고, 시급한 문제라 생각드는 걸 꼽아 보았더니...다 학교와 관련된 거였다. 이젠 더 할 말도 없는 학교폭력에, 최근 교과부가 경제적인 이유로(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시골 작은 학교들을 싹 폐교 시키고 통합할 계획인 소규모 학교 통합, 나라 전체가 미쳐서 한 해 20억이나 되는 사교육비를 날리고 있는 걸 보다 못해 학부모 연대가 들고 나온 ‘선행학습 금지법’까지... 죄다 학교 아니면 교육문제이다. 학교폭력 문제는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가 이 주제로 토론을 하기로 한 바로 전 날에도 지역의 여고생이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녹화 당일 날 교육감이 인사보다 사과를 먼저 했다. 물론 그도 미안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어른들 모두가 미안해 해야 할 일이다.
나도 미안한 마음에 시집 한 권을 추천한다.
‘내일도 담임은 울 삘이다’ 라는 이 시집의 작가는 서울의 한 공고생들이다. 빈 자리와 문제아는 많고, 공부하는 학생은 적은 이 공고에 처음 온 교사들은 뭐든 삐딱한 아이들 때문에 몇 달을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아이들에게 펜과 종이를 주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래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 때 그 때 욕구를 내뱉듯이 살아가는 학생들의 삶에 제동을 걸고 싶었다. 잠시 멈추고 습관처럼 무뎌진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쳐보자는, 그래서 도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아차려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펜을 잡은 지 3년 만에 아이들은 시인이 되었다. 거칠지만, 솔직하고 재치있는 시들을 쏟아내었다. 아이들은 그 동안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니라, 생각을 말 할 곳이 없었다고 했다.

손가락 / 최재하
오늘 우리 반 어떤 아이가 /기계 작업을 하다 / 손가락이 잘렸다.
기계가 돌아가는 부분에 손을 넣었다가
/ 다른 애가 작동시켜서 잘린 것이다. / 둘 다 불쌍하다

울보 담임 / 김동진
담임은 울보다 / 우리가 쪼금만 잘못해도 운다
다른 선생님 시간에 떠들어도 운다/ 대들다가 울면 우리만 불리해진다
내일도 담임은 울 삘이다

너희들의 시선/ 정준영

내가 공고에 다닌다고 / 그렇게 쳐다 볼 일 아니잖아
내가 공고에 다닌다고 / 그런 말 해도 되는 거 아니잖아

그런 어른들의 시선이 / 우릴 비참하게 만들잖아

너희 학교는 공고니까 / 비웃듯 말하는 네 표정이
너랑 나랑 이젠 다르다는 말투가/ '내가 왜 그랬지'라는
하지 않아도 될 생각을 하게 만들잖아
자꾸 그렇게 볼수록 정말 난,/ 네가 말하는 내가 되어 가고 있잖아

나는 이 시집 한 권에서 교육부 장관도 풀지 못한 이 어려운 학교문제의 답을 약간은 찾을 수 있었다. 삼일 후 마지막 녹화다. 앞으로 토론프로에서 학교문제 더 이상 안 봤으면, 아이들이 뛰어내렸다는 뉴스 더 이상 안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