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1-30 10:21
[73호] 회원 글1 - 돈 뿐 아니라 시간도 부족한...
 글쓴이 : 인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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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림 l 회 원

이미 가 버린 지난 해 마지막 날 늦은 저녁, 미국행 비행기를 탔는데요. 그러니 비행기 안에서 새 해를 맞이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웬걸, 10시간 비행 끝에 시애틀에 도착하니 아직도 12월 31일, 심지어 오전이더군요. 이건 또 뭔가...제가 2014년에 있는지 아님 2015년도에 있는지 잠시 헷갈렸는데요. 영어로 1월은 January,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 Janus(야누스)의 이름에 기원한다고 하는데요, 이 신은 하늘의 문지기, 한 해의 문을 연다 하여 1월의 이름이 되었다지요. 그런데요, 아시다시피 야누스 신은 얼굴이 둘, 그래서 앞도 보고 뒤도 본다, 즉 1월이란 뒤돌아보면 작년, 앞을 보면 올 해, 그런 뜻도 있다고 하니, 저도 비행기 안에서 두 얼굴로 가는 해 오는 해를 다 본 셈, 時差로 인해 나름 신기한 경험을 했네요.

시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 꽤 된 빌 퀘인의 <시간빈곤>(나라, 2006)은, 다들 소득빈곤 이야기만 할 때 우리가 얼마나 시간적으로도 억압되고 가난한 상태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면, 그것이 바로 시간빈곤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특히 장시간 노동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경우 더 진지하게 고민할 지점을 알려주고 있기도 하지요. 지난 해 11월, ‘소득과 시간빈곤 계층을 위한 고용복지정책 수립방안’ 이 발표되었는데요, 연구에 참여한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근로시간이나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여성에게서 시간빈곤이 더 많이 발생한다, 특히 취업여성의 시간빈곤문제가 심각하다는데, 아이 기르며 가정살림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은 자기 몸을 돌볼 시간도 또 여가를 즐길 시간도 없는,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고 하겠지요.

어디 취업 여성뿐이겠어요, 노동집약적인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들 대부분은 시간빈곤을 일상으로 경험하고 있을 텐데요, 노동자 뿐 아니라 좀 더 넓게 확산해 보면, 우리의 현실에서는 아이들, 아동과 청소년들의 시간빈곤이 어른들보다 결코 덜 하다로 말할 수 없겠지요. 한창 즐겁게 놀고 잘 자고 꿈을 꾸며 살아야 할 아이들이 지금, 무엇을 위해 그리 바쁘게 사는지 돌이켜보면, 정작 이 땅의 아이들이야말로 시간빈곤을 온 몸과 마음으로 겪는 중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언제까지 이런 세태가 계속될는지, 저만의 고민은 아닐 겁니다.

<고래가 그랬어> 로 유명한 김규항 작가는, ‘민주화세대 부모들 왜 애들은 못 놀게 하나’ 라고 문제 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부모들이 살아냈던 지난 시절, 독재와 억압으로 점철된 그 시절에도 아이들은 오후 내내 지치도록 놀았는데, 그렇게 자유를 외치고 민주교육과 아동인권을 주장하는 그들이 자기 손으로 아이들을 학원으로 떼밀고 있다,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한다니 이건 또 뭐냔 말인가, 라고 치열하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러게요, 학창시절 학교는 암울했으나 그 곳을 빠져나오면 거리가, 시장터가, 들판이, 논밭이 또 집이 온통 놀이터 이였는데요,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는 왜 그런 일상을, 신나는 삶의 현장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는지, 이건 아마도 부모들의 ‘직무유기’다 라고 한다면 좀 과장일런지요?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한 현실을 조금씩 바꾸면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아이들은 잘 자고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을, 어른들은 일과 여가를 조화롭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요,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까요? 혼자 꾸는 꿈을 여럿이 같이 하면 현실이 된다는데, 그렇게 새 해 다짐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해결이 되기는 할는지 자신이 없다고요? 누가 아나요, 올 한 해 이제 시작인 걸요, 우리에게는 아직 12달이 남아있는걸요. 그 날은 기필코 올 겁니다, 다만 같은 꿈을 꿀 수만 있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