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7-28 09:39
[68호] 여는 글- 인권, 작은 이야기이기도
 글쓴이 : 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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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완 l 공동대표

 느끼지 못하는 건 그만큼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너무 익숙해서 차별되고 사람이 여물지 못하다보니 평생(?) 뜨뜻미지근하게 살아왔다. 말이 좋아 ‘뜨뜻미지근’이지 회색인이랄지 경계인이랄지 그런 식의 삶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각종 ‘이즘(ism)’이 싫다. 자본주의(capitalism)도 싫고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의(communism)도 싫다. 그러면 무정부주의로라도 가야할 터인데 이것도 anarchism이니 쫓을 수가 없다.

그래도 민주주의는 거부할 수가 없는데 다행히 영어로는 democracy, 원어는 ‘민중에게 권력을’(demos+kratia)이란다. 민주정(체)이라고 할 번역을 민주주의라고 해 놓은 게 잘못이라고 꾸짖으면서 슬쩍 백성이 주인이라는 데 올라탄다. 그동안 권위주의 체제에서 그 잘못된 권위를 타파하고 백성에게 권력을 되돌려준다는 차원에서 인권 담론은 큰 구실을 해왔다.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약자)가 아직도 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생각할 때 거대 인권 담론은 여전히 유효하고 소중하다. 문제는 이 거대 담론은 우리를 쉬 피곤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작은 이야기로 인권을 얘기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예를 들면 이런 얘기다. 김경집은 남녀 옷의 단추에 주목한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쓴다(김경집, 인문학은 밥이다, 알에이치코리아, 2013, 604쪽).
옷 입은 사람 입장에서 볼 때 남자의 단추는 오른쪽에 달려있고 여자의 단추는 왼쪽에 달려있다. 왜 그럴까? 남자들은 제 손으로 옷을 입고 벗으니 오른손에 단추가 닿는 게 유리하고 여자들은 누군가 입고 벗겨주는 사람이 있으니 왼손에 다는 게 편리해서 그렇다고 한다. 왜 여자들은 다른 사람이 입히고 벗겨주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흑인 하녀 마미가 스칼렛의 옷을 입혀주고 코르셋을 조여 주던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단추는 초기에 귀족들만 달 수 있었다. 그러니 여자들에겐 그런 하녀가 딸렸다. 그리고 기사도의 전통에 따라 하녀가 없을 때는 남자들이 그것을 도와주었다. 그래서 여자들의 옷에는 목 뒤에 단추가 달리거나 단추의 위치도 남자 옷과는 달랐던 것이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요즘 여자들이 하녀 없어도 왼손으로 입고 벗는 데에 별 불편함도 없는 것은 처음부터 그래 와서 익숙하고 굳어진 때문이다. 눈여겨보면 남자와 여자 옷의 단추의 위치가 다른데도 별로 의식하거나불평등한 일상사들이 얼마나 많을까.

찬찬이 따져보면 우리 주위에 이런 식의 반인권적인 일들이 널려 있다. 이제 이런 일들을 찾아 하나하나 따져 보고 인권 친화적인 문화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건 아닌지?

그리고 인권을 영성의 차원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다. MBTI로 대표되는 심리분석, 심리치료 등 심리학이 각광을 받고 있는 시대라 에니어그램의 방법론을 도입해 봄직하다. 현대 에니어그램 연구를 이미 중세에 예측한 인물이 라몬 룰(Ramon Lull, 1236-1315)이다. 룰은 현존하는 어떤 종교에서도 취하지 않은 새로운 영적 언어를 찾는 데 열정을 쏟았다. 그는 비폭력의 원칙이 전제된다면 일신교라도 평화에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교회는 세계를 복음화하기 전에 스스로 회개하고 갱생해야 하며,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늘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룰의 접근법을 다음 그림 두 개로 볼 수 있다.

※ 자료 : 리처드 로어·안드레아스 에베르트, 내 안에 접힌 날개, 바오로딸, 2006, 58-59쪽.

이 그림은 신의 존재에 관한 것이지만 신 대신 인권을 넣어 다시 읽어보면 왼쪽 그림은 거대담론으로서의 인권을, 오른쪽은 작은 이야기로서의 인권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그림의 적절한 조화 속에서 우리는 인권의 숨겨진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그림A로 가야겠지만 그에 도달하는 길은 그림T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이고, 그 노력이 쌓이고 쌓여 신(인권)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조직의 차원에서는 회원 개개인과의 소통(의 기회)을 늘여야 하고, 회원 서로 사이의 소통을 늘여야 한다. 그 가운데 조직이나 개개인의 문제가 도출될 것이고 그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우리 일상에서의 인권 침해를 해결하고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회원에 대한 인권 교육의 기회도 넓혀가야 할 것이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조직과 그 소속 원 역시 차츰차츰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망상이라고 하신다면, 여름의 더위 탓이라고 돌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