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7-24 11:46
[78호] 회원 글 1
 글쓴이 : 김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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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한 인권평화기행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한태경 l 회원

설레임 반~· 두려움 반~
엄마와 나. 둘 다 일본은 초행길이다.
인권평화기행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구성은 주로 가족단위다.
아들과 엄마, 엄마와 딸, 딸과 아빠, 부부, 친구....
그래서 모두 가족 같고, 정겹고, 서로를 배려하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여행이라 늘 즐겁다. 멀미를 하지 않는다는 고속항운 코비를 타고 부산항을 출발하여 도착한곳은 후쿠오카항.

후쿠오카항에서 택시를 타고 하카타역으로 이동하면서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패밀리마트였다. 익숙한 풍경에 다소 긴장감이 해소되었다. 하카타역에서 열차로 한 시간 거리인 타케오는 사방을 둘러싼 산속에 고요히 자리 잡은 온천마을이다. 수령 약 3000년의 신비하게 생긴 거대한 녹나무와 오래된 역사를 지닌 온천들. 4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도자기 가마 90여개가 있는 타케오는 전통을 간직하고 산악과 풍광이 어우러지는 올레 중 한 곳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기차역에서 내려 도심을 가로질러 20여분 걸어가니 금방 울창한 대나무 숲이 우리를 반겼다.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한번 꼭 가봐야 할 이색 도서관이라 하는 ‘일본 사가현 다케오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인구 5만 명에 불과한 소도시 도서관이지만 연간 이용자가 1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끝없이 진열된 엄청난 양의 도서와 깔끔하게 진열된 책들이 아름다운 조형미를 자아내었으며, 입구에 자리한 스타벅스가 눈에 띄었다. 열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고, 일부 열람석에서는 자유롭게 대화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스타벅스의 직원들이 너무 상냥하고 인사를 깍듯하게 한다며 커피한잔 팔아주자는 엄마의 제안에 냉커피 한잔을 마시며 더위와 도보에 지친 발걸음을 달랬다.

다케오 도서관을 나와 자그마한 산모퉁이를 돌아올라 거대한 삼나무들이 둘러싼 산길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타케오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힘을 준다고 믿는 영험하고 거대한 녹나무가 가까이 다가서기조차 두려운 자태로 버티고 있었다. 지친 발걸음에 녹나무의 신비한 힘을 얻어 또 한그루의 녹나무가 자리한 사카라야마 공원을 지나 타케오 온천에 도착하였다. 온천으로 걸어오는 내내 사카라야마 공원 녹나무 아래에서 그림을 그리며 데이트를 하던 한 쌍의 고등학생의 순수함이 미소 짓게 만들었다.

타케오 온천은 보습력이 탁월한 미인탕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후라이산 기슭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온천으로 약 1300년 전부터 맥을 이어왔다고 한다. 약알칼리성 탄산천이라 수질이 부드럽고 피로회복 및 위장병과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타케오 온천에서의 정갈한 저녁코스요리와 야외온천의 기대감이 첫날에 여독을 풀어주기에 충분하였다. 엄마와 함께 야외온천에 들어서니, 한곳에는 일본인들이, 또 다른 곳에는 중국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 공간에 3국의 특징들이 모두 나타났다. 중국인들의 활발함, 일본인들의 조용함, 한국인의 신중함.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다음날 아침 온천 부근의 마을을 둘러보았다. 이 작은 도시에 가방과 옷을 직접 만들어 파는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가내수공업이 아직 살아있다는데 깜짝 놀랐다. 이것이 일본 경제의 저력이 아닐까?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힘든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를 생각하니 무척 부러웠다.

큰길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다케오 온천의 따듯한 미소를 뒤로하고 다시 기차를 타고 양심 있는 일본인들이 만든 가해역사를 고발하는 오카마사하루 기념관을 방문했다. 오카마사하루 자료관이 들어서있는 곳은 국립 나카사키 평화기념관 서쪽 언덕에 있었다. 시민들의 힘으로 운영되는 역사평화공원기관인 오카마사하루평화자료관은 나카사키역에서 걸어서 5분정도 걸렸다. 엄마와 두 손을 꼭 잡고 오른 가파른 언덕이 후덥지근한 날씨 탓인지 제법 길게 느껴졌다.

1995년 10월 1일 문을 연 이 자료관은 목사이자 나가사키 시의원을 지낸 오카마사하루 목사의 뜻을 이어받아 세워진 곳이다. 오카마사하루 목사가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대표를 맡으면서 나가사키에 숨겨진 조선인 피폭문제와 강제노역에 대한 반성과 보상을 촉구해 왔으며, 일본의 가해 책임을 분명히 밝히고 현재에도 남아있는 차별 철폐와 정부의 보상을 실현하게 하기위한 자료관 건립을 구상하셨다고 한다.

자료관 설립기금 4,500만 엔은 25년 동안 월 18만 엔씩 갚는 대출금과 기부금으로 마련하였으며, 정치적 간섭을 받지 않으려고 정부나 행정기관의 재정지원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한다. 운영경비는 회원들의 회비와 찬조금, 입장료로 충당하고 있으며,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현 이사장은 다카자네야스노리 나카사키대 명예교수이다. 71세의 노구에도 열정을 다해 설명해주셨으며, 더 나은 일본을 위해 이 일을 한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신념에 찬 아름다운 청년을 보는 듯 했다.

나가사키 카톨릭센터 유스호스텔에서 짐을 풀고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과 평화공원을 둘러보았다. 저녁에는 6,000엔의 요금을 낸 택시를 타고 세계3대 야경을 자랑하는 이나사야마 전망대를 구경하는 호사를 누렸다. 나카사키시 한가운데 솟아있는 해발 303m 산 정상에 자리한 360도로 주변경관을 즐길 수 있는 전체가 유리로 된 원형 전망 돔이 인상 깊었다.

돌아오는 날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이자 시인이셨던 윤동주가 감금되었다 타계한 후쿠오카형무소 터를 방문했다. 형무소는 이전을 하고 작은 구치소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구치소 뒤편에 매년 윤동주를 추모하는 아주 작은 공원이 있었다. 일행 중 한분의 윤동주의 삶에 대한 설명과 함께 추모 묵념을 올리고 일본에서의 여정을 마쳤다.

소소한 기억들이 아직도 즐겁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여행을 통해 절친한 대학동기와 인권기행을 앞으로 쭉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고, 심심해질 때면 엄마와 함께 고소한 알사탕 같은,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추억이 쌓인 즐거운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