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3-02 17:01
[74호] 이달의 인권독서
 글쓴이 : 인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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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한담(山房閑談)

법정 지음 / 샘터사 / 1983 발제 : 이영환

※ 저자 : 법정
속명은 박재
이달의 인권도서
철이며, 1932년 10월 8일 전라남도 해남(海南)에서 태어났다. 1956년 통영 미래사(彌來寺)에서 당대의 고승인 효봉(曉峰)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같은 해 7월 사미계(沙彌戒)를 받은 뒤, 1959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승려 자운(慈雲)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78세(법랍 54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대표적인 수필집으로는 《무소유》 《물소리 바람소리》 《산방한담》 《텅빈 충만》 《스승을 찾아서》 《인도기행》등이 있다. 그 밖에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숫(수)타니파타》 《불타 석가모니》 《진리의 말씀(법구경)》 등의 역서를 출간하였다.

- 그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하늘은 호수가 되고 산은 호수에 잠긴 그림자가 되었다. 바로 보면 굴곡이 심한 산의 능선이 거꾸로 보니 훨씬 유장하게 보였다. 그리고 숲의 빛깔은 원색이 낱낱이 분해되어 멀고 가까움이 선명하게 드러나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다. 나는 하도 신기해서 일어서서 바로 보다가 다시 거꾸로 보기를 되풀이했었다. (거꾸로 보기)

- 불교의 평화사상은 이와같은 자비정신에 근거를 두고 나타난다.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반평화 적인 수단을 쓰는 것을 불타 석가모니는 강력히 배격했다. 그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미치는 정신적이며 도덕적인 감화력을 중시하여 강권에 의하지 않는 사회개혁을 이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안개 속에서)

- 스님들이 쓰고 그린다고 해서 덮어놓고 선서요 선화라 한다면 그건 말이 안된다. 그렇다면 스님이 아닌 사람들의 글씨나 그림은 선서나 선화도 될 수 없다는 억지가 되고 만다. (무념 무상 무주)

- 『바로 그거야. 그게 국적이 있는 한국적 얼굴이라는 거야. 1970년대의 한국적 얼굴! 그 무렵의 우리 조상들은 조국근대화를 위해 국민총화를 되게 했거든. 숨도 크게 못쉬면서 말이야. 그래 표정들이 이렇게 굳어버린 거지......』 (불타는 연옥)

또 제 정신을 지니고 살려면 바람직하지 못한 관계를 그때그때 개선해야 한다. 쓸데없는 대화를 피하듯이 나쁜 친구(불교용어로는 불선우)도 피해야 한다. 나쁜 친구란 악의가 있고 파괴적인 사람만을 가리킨 것은 아니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 종파적인 종교는 나무로 치면 한쪽으로 뻗은 가지다. 그 가지를 통해 줄기와 뿌리로까지 내려가지 않고서는 종교의 본질과 보편성을 바로 이해하기 어렵다. 가지는 자세히 살피면서 뿌리를 잊어버린 사람은 길 잃은 나그네. 히말라야에 이르는 길이 어찌 한 길뿐이겠는가. 한쪽 가지만을 붙들고 그게 다라고 거기 집착하려면 독선적이요, 배타적인 맹신과 광신에 떨어질 위험이 따른다. (종교와 자유정신)

- 저쪽 학생들은 어디에도 거리낌 없이 마음껏 탐구하고 이야기하고 쓸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젊음을 불태우면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은 어깨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주눅 든 사람들처럼 당국의 눈치나 살피면서 계속 기죽어 지낸 그 결과가 아니겠는가 싶었다. 이런 것이 곧 국력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인이라고 생각이 미쳤었다. (흥분과 망각)

- 우리들 자신의 내적인 성전과 법당이 허물어져가는 이 판국에 어디에 또 다른 성전과 법당을 더 세우겠다는 것인가. 국민소득이 늘고 생활수준이 구미 선진제국의 뒤를 열심히 따르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 이웃에는 절대 빈곤의 계층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가난한 이웃을 두고)

- 종교의 본질만이 아니라 온갖 사회현상의 핵심은 말보다도 살아 있는 행동에 있다. 지혜와 사랑과 덕의 실천행. 특히 선불교의 경우 절대적인 진리를 체험했다면 보편적인 현실세계에까지 그 진리가 확산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게 살아 있는 법이요 진리이지, 일상에 구현되지 않고 혀끝에서만 맴돌고 있다면 그것은 선도 종교도 될 수가 없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더라)

- 지는 해와 저녁노을을 지켜보고 있으면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저녁노을)

- 낙엽이 다 지고 훤출한 줄기와 빈 가지만 허공에 뻗어 있을 때 그것은 본질만 남은 나무의 본래 모습. 사람도 떨쳐버릴 것을 다 떨쳐버리고 나면 본래의 자기 모습만 남는다. 본래의 자기로 돌아올 때 나무도 사람도 다같이 단순하고 순수해진다. 이런 단순과 순수 속에서 자기응시를 통해 새로운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린다. 거듭거듭 새롭게 탄생한다. 출가 수행자에게 이같은 자기응시의 기간이 없다면,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도 모르게 둘레의 흐름에 물들고 말 것이다. 그래서 안거기간을 승가에서는 무엇보다도 고맙고 귀하게 여긴다. (겨울을 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