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l 3기 인턴
얼마 전 일이다. 방학동안 공부도 하면서 남는 시간을 이용해 대외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S생명에서 주최하는 대외활동에 지원을 했다.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덕분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지만 들뜬 마음도 잠시, 합격 문자를 자세히 읽어보고는 고민에 잠겼다.
처음 지원할 때는 합격만 시켜주면 뭐든 다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교통비 때문이다. 이번에 합격한 대외활동은 서울에서만 활동한다. 2주동안 무려 5번이나 서울을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 가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교통비를 비롯한 일체의 활동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합격문자를 받자마자 나는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지금 나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며 교통비 지원 유무에 대해 물었더니 답변은 간단했다. “교통비 지원은 불가합니다. 참가 여부 회신 바랍니다.” 이 짧은 답장에는 경제력이 없는 대학생에 대한 어떠한 배려심도 없어보였다. 오히려 ‘너 말고도 하고 싶은 사람은 많다.’라는 뉘앙스마저 풍겼다.(물론 철저히 주관적인 나의 생각이다.) 대학생인 나에게 서울을 5번 왕복할 수 있는 돈이면 족히 2달을 넘게 살 수 있다. 결국 고민 끝에 대외활동을 포기하게 됐다.
나는 다행히 이력서의 대외활동란을 가득 채울 정도의 경험이 있어서 이번 대외활동을 큰 고민없이 포기할 수 있었지만, 대외활동 경험이 부족한 지방대 학생들은 분명히 자기 돈을 내면서까지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을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면 지방에 사는 학생들의 S생명 대외활동 후기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교통비에 대한 어떠한 불만도 표현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할까? 그 이유는, 이 활동이 그 유명한 S생명에서 주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참가자들은 지방에서 서울까지, 자기 돈을 퍼부으면서 대외활동을 한 것을 ‘열정’이라 생각할 것이다. 담당자들 또한 기어코 자기 돈을 써가며 서울로 올라오는 학생들에게 ‘열정’적이라며 칭찬 한 번 해주면 교통비에 대한 불만은 쏙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S생명뿐만 아니라 각종 서포터즈, 기자단, 홍보단 등의 명칭으로 순진한 대학생들을 끌어 모으며 착취하는 활동들이 굉장히 많다. 기업들은 대외활동을 홍보하며 금전적인 사항은 담뱃갑의 조그마한 경고문구처럼 홍보포스터의 한 구석에 짤막하게 넣거나, 아예 기입하지 않는 것이 부지기수다. 금전적인 지원에 대해서 적어놓더라도 대부분이 애매모호하다.
그러고는 항상 ‘열정’을 가진 대학생들을 이용하려고 안달이 나있다. 어떤 중소기업은 ‘서포터즈’라는 이름하에 길바닥에서 자사의 상품을 파는 활동도 시킨다. 졸지에 학생들은 영업사원이 된다. 학생들은 ‘어쩔 수 없는거야.’, ‘이런 경험이 있으면 자기소개서를 쓰기 훨씬 편할거야.’라고 위로한다. 자신들이 ‘열정’적으로 살았다는 증거를 만들기 위해 아쉬워도 참는다. 기업들은 이렇게 청년들을 부려먹고 활동증명서에 도장만 찍어주면 끝이니 이보다 더 이득은 없다.
이런 상황에 불만을 가지는 대학생들에게 기업들은 말한다. “너희가 원해서 왔잖아.” 이 한마디에 을(乙)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열정페이’는 청년들의 ‘절박함’을 이용해서 청춘을 멍들게 하고 있다.
(추신 : 글의 제목은 한윤형, 최태섭, 김정근 작가가 지은 책의 이름입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읽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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