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문완 l 공동대표
팝송 두 곡을 들려드릴게요. Don McLean의 는 이런 가사로 시작하지요.
Starry, starry night
우리한테는 너무 친숙한 노래라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이 노래를 듣다보면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시리즈의 그 빛나는, 흐드러진 별들이 귀로 들어오지요. 그런데 이 양반의 대표작은 아마 라는 대곡일 겁니다. 이 노래는 Buddy Holly라는 전설적인 가수의 부고 기사를 보고 영감을 받아 지었다고 합니다. 가사 중
The day the music died
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만큼 이 양반의 죽음이 충격적이었겠지요.
그래서?
……
저는 가톨릭 신자라 예수님 말씀을 믿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이 분이 뒤를 받쳐주시는데 걱정할 게 뭐 있겠습니다. 또 다른 말씀은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기도만 하여라.” 성(聖)과 속(俗)을 아우르는 몇 가지 얘기로 한해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1. 세한도(歲寒圖)
등산은 사계절 다 좋지요. 다 나름의 맛이 있으니까요. 겨울 등산은 나무들의 속살과 고독, 인고를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울창한 숲일 때는 알 수 없었던 나무 하나하나의 모습을 알게 해주지요. 살붙이인 나뭇잎을 떨어뜨려야만 새봄을 맞을 수 있는 나무의 숙명, 전체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하는 그 절망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추사의 세한도는 누구나 좋아하는 그림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같은 문외한이 보기에는 그리 잘 그리지는 못한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열광을 할까요? 그림 자체보다도 그림에 덧붙여진 숫한 발문에 환호하는 건가요. 추사는 세한도로도 알려져 있습니다만, 실은 추사체라는 독보적인 서체로 유명하지요. 역시 저한테는 비뚤배뚤 지렁이 글씨일 뿐입니다만.
여하튼 왕의 외척으로 잘 나가던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라는 사건이 없었다면 추사체는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라니 이 얼마나 절묘한 배치인가요. 겨울 등산은 추사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2. 부활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님 부활에 있습니다. 이 사건이 아니라면 유대교와 차별성이 없겠지요. 그런데 성경의 복음서는 이 사건을 뜨뜻미지근하게 전합니다. ‘빈 무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하는데, 반대파에서는 그거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가 놓고 부활했다고 우기는 것 아니냐고 반박합니다. 복음서도 그 반박을 그대로 전하고 있지요.
결정적인 것은 신약의 사도신경이 전하는 얘기인데요, 겁쟁이였던 제자들이 (순교를 무릅쓰고) 예수님 말씀을 전했다는 대목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추정(추측)하는 거지요.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을 믿습니다.
종교 얘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구요, 부활(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기존의 삶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부활이 가능하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3. 병을 안고 살아가기
‘골골 팔십’이라는 말이 웅변하듯이 장수를 하려면 병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야 한답니다. 더불어 사는 삶이지요. 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엊그제 KBS 아침마당의 목요강좌(특정 프로그램의 홍보는 아님)에 나온 혈관이 전문이신 의사 선생님도 자신의 경험담을 말씀하시더군요. 자기가 8주나 감기를 앓았는데 몸조심을 한 덕분에 훨씬 좋은 몸으로 재탄생했답니다. 술꾼인 저는 오늘부터 술자리에서 석 잔만 마시자는 결심을 했는데, 이렇게 좋고 나쁜 일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지 않을까요.
4. 로고테라피
나치의 유대인 박멸 과정에서도 질기게 살아남아 그 경험을 증언한 사람이 적지는 않겠습니다만, 작가로서는 프리모 레비나 빅토르 프랑클이 알려져 있을 것 같습니다. 프랑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로 유명합니다. 제가 최근 읽은, 이 양반 자서전도 좋더군요. 자서전의 부제는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2012년 책세상에서 펴낸 책의 역자 박현용이 그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어(“아무 의미도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전해 드립니다.
“우리는 삶의 의미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답해야 한다.”
이것은 오스트리아의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빅토르 프랑클의 말이다.
빅토르 프랑클은 이 책에서 가족의 가혹한 운명을 “신은 모든 사람에게 각기 다른 죽음을 주었다”라는 릴케의 말로 압축하고 있다.
그는 출간하려고 했던 소중한 원고를 수용소에서 잃어버리고 상심했다. 하지만 배급받은 죄수복 안에서 “진심으로 네 영혼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쪽지를 발견하고,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열심히 살아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려고 노력했다. 수용소에서 견디기 힘든 중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고 하루에 단 한 컵 배급되는 물의 반을 남겨 세수를 하고 유리 조각으로 면도를 했다는 유명한 일화는 삶에 대한 그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프랑클은 수용소에서 살아 나온 뒤에 자신의 고통스러운 체험을 바탕으로 정신의학의 셋째 사상으로 불리는 ‘로고테라피Logotherapie’ 심리치료 이론을 발표했다. 로고테라피는 ‘로고스’와 ‘테라피’를 합한 용어인데, 로고스는 ‘이성’, ‘의미’를 뜻한다. 따라서 로고테라피는 우리말로 ‘의미 치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자아가 무너진 사람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쾌락 의지’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이 ‘권력의지’를 제시하는 데 반해, 프랑클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로고테라피는 고통에 처한 사람에게 앞날에 그 고통 자체가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심리치료법이다. 프랑클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의지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가 비참한 상황에서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힘을 마련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5. 인권의 기본에 충실하기
지금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시간입니다. 기존의 모든 것을 버리고 밑바닥부터 다시 다져나가야 할 때입니다. 인권을 얘기하자면 차이와 차별부터 시작해야겠지요.
최근 발견한 시가 기가 막힙니다. 제라드 홉킨스(Gerard Hopkins)라는 빅토리아 시기 영국에서 사제이면서 시인의 삶을 사신 분의 시입니다.
<인스케이프>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다르고
독특하고 희귀하고 낯설구나.
빠르거나 느리고,
달거나 시고,
밝거나 어둡구나.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답구나.
누구의 뜻인가?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고,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세밑 마무리 잘 하시고,
희망의 새해를 맞으시기 바랍니다.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다운 세상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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