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0-01 11:01
[81호] 두 번째 시선
 글쓴이 : 김규란
조회 : 9,221  

Les Miserables (버림받은 자들)
___이섬균 l 인턴

이제 교환학생 기간도 1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 친구들과 지인들과 안미경 차장님이 약속하셨던 매일갈비를 생각을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제 돌아가면 뉴욕뿐만 아니라 외국을 방문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많이 남기도 합니다.
그래도 남은 기간을 알차게 보내고자 4월 19일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란 뮤지컬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레미제라블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레미제라블은 우리나라에서 ‘장발장’이란 이름의 소설로 더 유명하고, 몇 년 전에는 이를 영화화 한 작품이 크게 흥행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두 번째 시선
기억합니다. 원작 소설은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방대한 분량이라 한 권 분량으로 편집된 책으로 접하시거나 보통은 빵도둑 장발장 정도로 기억하실 듯합니다. 저 역시도 아주 예전에 한 권으로 된 책을 읽어 본 적이 있지만, 제 기억속의 장발장은 ‘불쌍한 빵 도둑’정도로만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인 1832년 프랑스 6월 항쟁이 있었던 그 시절 프랑스 민중들의 비참했던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장발장은 빵을 훔친 죄로 17년간 복역을 한 후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다가 주교의 구원을 통해서 신분을 숨긴 후 새 삶을 살게 됩니다. 형사(자벨)가 계속해서 장발장을 의심하고 결국은 그가 신분을 숨겼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장발장은 또다시 도망자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민혁명에 참여합니다. 그 도중 스파이로 잠입한 자벨을 붙잡지만 장발장은 자벨을 아무런 대가없이 풀어 줍니다.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 자벨은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됩니다. 혁명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살아남은 장발장은 남은 일생을 편안히 살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서 숨을 거둡니다.

이 뮤지컬은 저에게 ‘정의’를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극 중의 모든 캐릭터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정의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갑니다. 장발장은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판틴(창녀)은 하나뿐인 자신의 딸을, 자벨은 법을 자신만의 정의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작품의 수많은 캐릭터 중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자벨(형사)입니다. 그는 법을 수호하는 것만이 절대적인 정의라고 생각하고, 법을 숭배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인간으로써 느끼는 죄책감마저도 법에 기대어 지우려 노력하지만 결국은 장발장의 용서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하여 죽은 7살 소년의 시체 앞에서 자신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껴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됩니다. 표면적인 줄거리만 보면 자벨은 악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볼 수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악랄한 행동을 일삼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문득 자벨이 꽤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까닭은 오로지 자벨이라는 캐릭터 홀로 자신의 정의에 대해서 심각한 고찰을 하기 때문입니다. 정의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서,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가변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과 이상을 가지고 있듯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정의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를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고, 또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며 살아갑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의 기준을 계속해서 의심하며 피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극 중의 자벨처럼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의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찰하는 그런 피곤한 자세야 말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글을 써주신 이섬균님은 2014년 상반기 울산인권운동연대 인턴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현재, 울산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