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8-31 14:13
[80호] 시선
 글쓴이 : 김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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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송혜림 l 회원

대중매체에서 바야흐로 예능이 대세인 시대인가 봅니다. 넘쳐나는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등장하는데요, 소위 트렌드분석을 통해 예능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까지 아이 기르는 연예인 가족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고 한창 유행했는데, 저출산 시대에 내 아이를 낳을 엄두는 안 나지만 다른 사람이 아이 기르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한다는 분석도 있었지요. 그런데 그것도 좀 지나갔나봅니다. 이제 대세는 ‘집 그리고 밥’ 이라는 주제로 축약되는 것 같은데요. 한 끼, 세 끼, 집 밥, 냉장고, 내 친구의 집과 같은 제목의 프로그램이 그런 추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네요.

사실 집과 밥은 두 개의 동떨어진 단어라기보다 하나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식구는 한 집에 살며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일 테니까요. 즉 우리가 집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아마도 가족과 함께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이었을 텐데, 글쎄요, 요즘은 하루 한 끼도 같이 먹기 힘든 삶이 되고 나니,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가나 봅니다.

프로그램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중 하나가 주로 남성출연자가 등장한다는 것이지요. 오랜 기간 가족 부양과 수입 노동을 책임져온 남성의 경우 돌봄이나 살림이 익숙하지 않을 텐데요, 맞벌이가 보편화되는 현실에서 남성의 가족역할이 강조되고, 가족친화적인 직장문화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을 보면, 요리 프로그램에 남성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어쩌면 남성도 자신을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한 끼 식사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뭐 그런 시대적 요구의 반영이라 할까요. 얼마 전 어떤 기업 연구소에서 노후준비 실태조사 결과를 제시했는데, 노후에 아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가사도움 1순위가 청소 그리고 2순위가 ‘가만 있으라’, 로 나왔다지요. 노후가 길어지는 100세 시대를 위해 가장 필요한 준비과제로 남성들의 자기돌봄이라는 연구결과도 있고요. 그러니 집밥의 중심에 남성들이 서있다는 것은 이러한 흐름과 기대를 얼추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또 하나, 예전에는 구하기 힘든 재료로 전문 요리사가 만들어내는 요리가 대세였다면이제는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음식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인데요, 그런 프로그램에서 종종 나오는 말이 ‘혼자 사는 사람들도 쉽게 만들어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이지요. 이것 또한 1인 가구가 많아지는 현상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외식과 회식에 지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이제는 집에서 밥 한 끼 만들어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반영한 것이겠지요.
물론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 해서 남성들의 가사참여가 많아지고, 혼자서도 끼니를 알아서 해 먹는 사람들이 많아질 지는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를 보며 우리의 일상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된 것 또한 사실이겠지요.

그런데 그 뿐 아니라 각종 가상 결혼과 재혼, 몇 시간동안 남편을 바꿔서 살아보기, 가족은 아닌데 규칙적으로 식사를 함께 하는 모임, 나 혼자 사는 사람들의 체험 나누기 등 넘쳐나는 프로그램들 속에는, 결혼과 가족 꾸리기에 대한 부담 그러나 때론 무엇인가를 함께 하고 싶은 친밀감, 그 중에 제일은 소박하게 한 끼 밥을 누군가와 함께 먹고 싶다는 요구가 공존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가족은 엄청난 변화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겠지요.

다시 집밥으로 돌아가, 사실 집이란, 서로 걱정하고 서로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일상을 나누는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일 텐데요, 주고도 더 주고 싶은 마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쁜 마음, 되돌려 받음을 기대하지 않고 그저 주는 마음...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마 가족일 것이고, 그 가족과 함께 사는 곳이 집이니까요. 집밥을 자주 못 먹는 시대에 집밥이 대세가 되고 보니, 갈수록 결혼을 덜 하고 아이를 덜 낳는 우리는 그리고 우리 자녀세대는 이제 앞으로 누구랑 같이 밥을 먹고, 누구를 위해 밥을 하고, 누구를 걱정하며, 어떤 집에서 누구랑 살아가게 될는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 글을 쓴 송혜림 울산대학교 아동가정복지학과 교수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