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安寧)”하십니까?
편집위원
흔히 나누는 인사 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 “안녕하세요?”일 것이다. 안녕(安寧). 아무 탈이나 걱정이 없이 편안함을 뜻하던 말이 이제는 그 쓰임이 대부분 ‘만나거나 헤어질 때 인사로 하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안녕’이란 말을 쓰기기 쉽지 않다. ‘안녕’하지 못한 삶들을 숱하게 접하다 보니, “안녕하세요?”보다 “반갑습니다.”, “또 봅시다.”로 인사를 나누게 된다. 역사 속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밤새 안녕하셨어요?”라며 아침 인사를 나누던 때가 있었다. 밤사이 아무 탈 없이 지나갔는지를 묻는 것이다. 하루해가 저물면 오늘 밤은 아무 탈 없이 넘어가기를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하룻밤을 탈 없이 넘기는 것에 감사했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안녕”이란 말을 편히 주고받으려면 삶이 안정되어야 하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누구도 안전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 듯하다. 지진과 태풍, 산재와 교통사고, 개인 간에 폭력 등 매일 뉴스를 장식하는 쇼킹(?)한 사건사고들 뿐만이 아니다. 금리, 교육, 고용 등 어느 것 하나 불안하지 않은 것이 없다. ‘불안’, 말 그대로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다. 사회 전체가 ‘불안’을 먹고 사는 듯하다. ‘불안(不安)’은 걱정이 되어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뜻이다. 걱정이 되는 이유는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이 편할 수 없다. 당연히 ‘안녕’할 수가 없다.
얼마 전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산재사고 현장에는 가까운 지인이 있었다. 그날 자재가 들어와 옮기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바로 그 사고 장소에서 작업 중이었을 것이라 한다. 자신이 작업 중에 사고가 발생했다면 어찌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다. 동료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면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한다. 동료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신이 살아있음에 대한 안도감을 번갈아 나타낸다. 그리고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사고의 흔적들을 묻어둔 채로 그 사고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
‘안전’이 담보되지 못한 작업현장에서 ‘운(運)’에 목숨을 맡기고, 아무런 사고 없이 하루를 넘긴 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정리한다. 그리고 또다시 아침이 오면 “오늘도 무사히~!” 기도를 올리며 작업을 시작한다. ‘안전’을 담보해주지 않은 사회에서 ‘국가의 책임’은 술자리 안주꺼리로 올라올 따름, 이미 포기한 듯하다. 너도 나도 삶이 불안하다.
“안전”이란 주제로 기획기사를 시리즈로 펼쳐보자는 이야기가 나오자 다양한 사례들이 나온다. 여러 갈래의 영역들이 쏟아진다. 어느 곳에서 출발하고 어느 곳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래도 한번 다뤄보자 결론을 내렸다.
“인권”이라는 것이 사람이 사람으로서 대우받기 위한 최소의 권리라면, ‘안전’은 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의 보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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