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고를 비는 기도’
이영환 l 편집위원장
몇 일전 진도 5.0의 지진이 발생하여 건물이 심하게 흔들릴 때 25년 전의 걸프전이 떠올라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젊을 때 배를 7년 정도 탔는데 한번은 나토군이 사용하던 군수물자를 싣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담맘항으로 수송을 했는데1991년 1월 16일 미군 장교가 본선을 방문하여 이라크가 유사시에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으니 배부하는 방독면을 사이렌이 울리면 곧바로 착용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설마 전쟁이야 발생하겠나 하는 의구심에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3시(LMT-Local Mean Time)에 사이렌이 울리는데 잠에 취한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넋을 잃고 멍하니 있는데 2항사 선배가 “야 후배야 전쟁이다, 전쟁!”하고 소리치며 빨리 방독면을 착용하라고 소리쳐 그때서야 주섬주섬 일어나 방독면을 착용하고 밖을 나가보니 모든 사람들이 군인, 민간인 할 것 없이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때마침 선내 에어컨고장이 나서 더위에 시달리는데 방독면까지 착용하고 보니 호흡이 힘들고 더위는 염천을 방불케 해 ‘누구 할 것 없이 이러다 죽겠구나.’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같이 생활하던 미군 병사에게 물어보니 사이렌이 울림과 동시에 미사일 3천발을 쏘았다는 내용과 아직은 위험하니 방독면을 착용하고 기다리라는 말만하고는 부대로 가버려 밥도 굶고 몇 시간을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로 기다리다 지쳐 모든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했다.
내가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매 한가지라며 방독면을 먼저 벗고 보니 너무 시원하고 좋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벗으라고 권하자 내 상태를 20분 정도 지켜본 후 하나 둘씩 방독면을 벗었다. 그런데 방독면을 쓰고 반나절을 겪고 보니 에어컨고장 때문에 힘들어 하던 시간은 그래도 행복했다는 생각에 다들 시원하단다. 전쟁과 죽음을 눈앞에 두고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고 그저 살아 있음에 안도한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것이 인구 380만이 밀집해 살고 있는 우리 지역에 핵 발전기를 2개 더 건설 한다는 정부의 발표를 비웃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다. 우리나라도 사고가 날 확률이 가장 높다는 동국대 김익중 교수님의 경고가 아니라도 더는 건설해서는 안 되는 핵 발전을 고집하는 위정자들을 보면 다음 세대에게 죄를 짓는 것만 같아 답답하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무사고를 비는 기도'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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