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7-04 11:48
[90호] 여는글 - 나는 어떤 부모일까?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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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부모일까요?

송혜림 l 이사

다음 중 자녀학대에 해당되는 항목은 무엇일까요?

① 추운 날, 말 안 듣는 자녀의 옷을 벗겨 베란다나 현관 앞에 세워놓는다
② ‘성적도 안 오르는데 학원비 주는 것도 아깝다’고 말한다
③ 아이 방에서 정해진 시간까지 공부하게 하고 못 나오도록 방문을 잠근다
④ 아이 앞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부수거나 애완동물을 때린다
⑤ ‘너 이렇게 말 안 들을 거면 집에 들어오지 마라, 집에서 나가라’고 말한다
⑥ ‘공부를 못 하니 너 밥 먹는 모습도 꼴 보기 싫다’고 말한다
⑦ 공부, 학습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용돈을 안 준다
⑧ 아이 앞에서 부모가 아이 문제로 싸운다
⑨ 졸려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각성제나 에너지음료를 준다
⑩ 초등생 아이에게 성적 올리라고 새벽 2시까지 공부하게 한다

10개 항목 모두 학대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지난 5월, 제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 (사)가정을건강하게하는시민의모임(가건모)에서 자녀와 부모를 대상으로 위 내용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자녀와 부모 모두 학대라고 응답한 1순위 항목이 ①번, 추운 날 말 안 듣는 자녀의 옷을 벗겨 베란다나 현관 앞에 세워놓는다 로 나왔더군요.
자녀에 대한 부모의 학대 사건이 사라지지 않고 매체를 통해 계속 보도되고 있는데요, 그러면서 부모역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정부 차원에서는 아예 지난 5월 부모교육 주간을 선포했다지요. 이러다가 어쩌면 혼인신고 혹은 자녀 출생신고 할 때 부모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런 제도도 생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논쟁도 한창입니다. 지극히 개인적 생애사건인 결혼과 출산에 제도화된 부모교육이 개입됨으로써 자율성 혹은 인권의 침해 소지는 없는지,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서 자녀학대에 대한 민감성도 높이고 건강한 부모역할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고민이기도 하지요.

서울시에서는 이혼을 앞둔 부부를 상대로 법원이 실시하는 '부모교육' 내용에 아동학대 방지교육을 포함시킨다고 하고요. 부모역할이, 이제는 공부까지 하면서 익혀야 하는 주제가 되었으니, 이래저래 부모가 되기도 또 좋은 부모노릇을 하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역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가 뭘 알고 있나, 싶기도 합니다. 7년 전 가건모에서 좋은부모운동을 시작할 때 일곱 가지로 정리해 놓은 내용이 있는데요. 신나는 부모(부모 됨이 자랑스럽고 기쁘고 즐거운 부모), 참교육 부모(자녀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부모), 책임 있는 부모(자녀의 독립을 존중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자녀를 독립시킨 부모), 노력하는 부모(부모교육이나 가족봉사참여 등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 이웃 나눔 부모(가족품앗이활동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부모),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부모, 안전지킴이 부모(자녀와 가족을 둘러싼 지역과 환경의 안전과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며 실천하는 부모)가 그것이지요.

이번 설문조사에서, 자녀들이 원하는 부모 1순위는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부모로, 부모님들 스스로가 원하는 이상적인 부모 1순위는 책임 있는 부모로 나타났습니다. 부모는 일하느라, 아이들은 학원 다니느라 바빠서 도통 시간 내기 힘든 구조를 바꿔야 부모자녀가 함께 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겠고, 또 사교육을 줄이고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해야 자녀를 독립시킬 수 있으니,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엄청난 숙제를 해내야할 듯싶습니다.

뭐, 여성학을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평등한 관계를 위해 남편 붙들고 설거지해라 어쩌구 하면서 치고 박고 싸우다가, 결국 투쟁의 대상은 남편이 아니라 이 남자들을 그렇게 만든 가부장적 문화와 제도임을 깨닫게 된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즉 개인보다는 사회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집에서 내 아이 붙들고 공부 하나 더 가르치고, 더 좋은 학원 보내 성적 올리는 것보다, 동기와 자발성을 완전 무시한 채 이 끝도 없는 사교육시장에 아이를 내몰게 하는 구조, 이로써 발생하는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해결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이라는 공감대 형성만 되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좀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도 해 봅니다. 좋은 부모란, 이런 세상을 위해 길을 트고 스스로 마중물이 되는 사람들이겠지요.

※ 송혜림 이사는 현재 울산대학교 아동가정복지학과 교수로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