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1-07 01:24
[82호] 인권 포커스
 글쓴이 : 김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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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짧은 생각
_박인숙 l 삼일여자고등학교 교사

얼마 전 수업시간에 청나라의 대표적 총서인 사고전서에 대한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 완성한 사고전서는 왕실 뿐 아니라 민간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모아 경(經), 사(史), 자(子), 집(集)으로 나뉘어 펴낸 중국 최대의 총서이다. 방대한 양의 자료수집과 4천여 명이 넘는 한족 학자의 동원이라는 것만 봐도 대규모의 편찬사업의 결과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고전서 편찬과정에서 청은 한족을 통치함에 있어 불리한 내용들은 싣지 않거나 분서, 금서를 하기도 했다. 만주족이 중원을 지배함에 있어 통치에 있어 불리한 내용을 지우거나 없애버린 것이다.

통치에 있어 불리한 것은 지워도 된다? 아니면 수정해도 된다?

현재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정부는 불리한 역사적 내용은 지우고 수정하려는 것이 아닌가? 정부 발행 교과서를 통해 정부는 교과서 발행, 수정도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바뀌었을 때 역사교과서 내용은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부의 기호대로 바뀌는 교과서는 일관성 없는 교재로 전락할 것이다.

또한 정부에서 발행하는 국정교과서 하나만을 가지고 배우게 한다는 것은 획일화된 교육만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여겨진다. 현재 검정교과서는 나라에서 제시된 기준 속에서 출판사별로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역사적 내용을 이해함에 있어 다양하게 풀어낸다는 것은 학생들의 사실 이해 차원에서도 유용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출판사라고 해도 반드시 들어가야 할 공통적인 내용기준이 있어 혼란스럽지는 않다.

다만 국정화 된 교과서만을 학습한다면 하나의 관점, 획일화된 내용만을 숙지하고 그것이 굳어져 버려 학들들의 사고의 유연성과 비판성이 결여될 수 있는 있다는 염려도 된다. 학생들은 교과서 내용을 다 알아야지 만이 다가올 입시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더 느낄 수도 있다. 이미 다양화 되고 변화하는 속도가 빠른 우리 사회에서 오로지 하나의 교재로만 역사를 배우고. 익히자라고 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역사라는 교과목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은 가까운 미래에 사회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존재이다. 이들에게는 앞으로 적응하게 될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것을 학습해야할 것들이 있다. 이 중에 역사과목은 과거사실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현재속의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과 엮어져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고 배워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비판적 사고력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학생들이 다양한 사실을 수용함에 있어 비판적 자세로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 형성은 역사과목을 통해 배우는 것 중 하나다. 세계 어느 곳의 소식을 바로바로 접하고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는 이 시대에 하나의 교과서, 정해진 정답만을 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가?

오늘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려는 사실은
내일 또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어 남을 것이다.
현재 사람들의 기억과 기록을 접할 후대 사람들은 어떤 다양한 의견들과 비판들을 쏟아낼지 궁금하다.

※ 박인순 선생님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역사교사모임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현재 삼일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