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7-24 14:13
[79호] 여는 글
 글쓴이 : 김규란
조회 : 8,963  

태화강 물에 발을 담그고 싶다
_최민식 l 상임대표

오늘도 아침 산책으로 선바위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여느 해 같으면 물놀이 명소가 된 선바위 다리 밑으로 얕은 강물을 건너 돌아오곤 했는데, 올 여름엔 그런 적이 없습니다. 강물을 건너며 느끼던 시원함이 아니라 춥다는 느낌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여름의 반이 훌쩍 지났지만 여름다운 더위 한번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덥고, 습하고, 답답합니다.

기온 말고 덥게 하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열불내면서 이 사회를 고민하고, 누군가는 열심히 쫓아다니고, 누군가는 살겠다고 아우성치고, 누군가는 무관심하고, 누군가는 의미 없는 삶에 쫓겨 허우적거립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즐기고 있을 것입니다.

8월입니다. 1974년 8월 8일, 미국 37대 대통령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날입니다. 새삼 워터게이트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일들이 무관심병에 메스를 대듯 일어나고 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란 1972년 6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닉슨 대통령의 측근이 닉슨의 재선을 위하여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 장치를 하려 했던 사건으로 선거운동에서의 '부정한 공작', 초법적 정보기구 등을 이용한 도감청 등 여러 가지의 부정행위를 의미합니다.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 사퇴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보여준 언론의 제 역할과 의미 있는 여러 일들이 국정원 해킹정국에 시사점이 많아 보입니다. 백악관이 워터게이트 침입사건과의 관련을 감추기 위해 '은폐'하려는 시도가 부메랑이 되어 결국 닉슨 대통령이 사퇴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박근혜정권은 되새겨야 합니다. 의회조사와 특검이 도입되고, 증거자료 제출을 둘러싼 국익과 국가안보 논란 속에서 미국의 선택을 보면 해법은 간단해 보입니다. 숨기고, 방해하고, 조작하고, 회유하고, 꼬리 자르기 등으로 덮고 호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국정원 해킹 의혹’에 답은 ‘의혹’을 푸는 것입니다. 그것이 박근혜대통령이 당당해 질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국익이요, 국가안보요, 국민의 인권입니다.

“개혁은 어렵습니다. 기득권 집단은 반발하고 성과를 내기까지 그 과정에서 더더욱 진통과 난관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그러나 이 개혁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둡고 특히 미래세대에 빚을 남기게 돼서 그들이 감당해야 될 몫이 너무 힘들고 고통의 반복이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21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너무 옳으신 이야기입니다. 국정원을 두고 한 말이라 능청스레 믿어봅니다. 국정원을 폐쇄하는 일이 쉽지 않을 터, '개혁(改革)'이라도 해야겠지요.

통제되지 않는 국가권력은 괴물이 됩니다.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던(Leviathan)이 울고 갈 것 같습니다. 홉스는 구약성서 욥기 편에 나오는 바다괴물 리바이던을 불러내 국가를 비유하고 전제군주제를 주창하지만, 그도 ‘군주의 절대적 권력은 오직 국민의 생명과 안전 수호를 목표로 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전제합니다.

리바이던이든 박근혜든 국정원이든 통제되지 않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괴물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인권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