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하나 - 전관예우, 결국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문제
오문완 l 울산대학교 법학교수
요즘 연일 신문을 달구고 있는 게 전관예우 문제다. 대형 비리 사건의 배후에 전관예우의 관행이 가로놓여 있다고 지적한다. 일간지라고는 한겨레신문만 보고 있으니 다른 신문의 논조는 모르겠고, 여하간 내가 읽는 한겨레신문은 그렇다.
국립국어원 국어대사전을 뒤적거려 본다.
전관-예우(前官禮遇) : 「명사」 장관급 이상의 고위 관직에 있었던 사람에게 퇴임 후에도 재임 때와 같은 예우를 베푸는 일.
일단 대상은 장관급 이상이란다. 그에 못 미치면 예우를 베풀어서는 안 되는 모양이다. 퇴임 후에도 재임 때와 ‘같은’ 예우를 베풀어야 하니 그에 못한 예우를 베풀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대통령 정도 되면 이해가 된다. 정적으로부터의 암살 위험 등등 걱정거리가 많을 터이니. 장관급이 돼도 그런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주위 변호사들한테 물어본다. 전관예우의 현실적 이득은 어떠냐고. 어떤 분은 1년 동안 평생소득의 60% 정도를, 다른 분은 80% 정도를 번다고 한다. 지금은 아니고 좋았던 시절에. 그런데 요즘 잘 나가던, 문제의 변호사는 그 정도를 훨씬 넘어섰다. 아니면 평생소득을 내가 너무 낮게 잡은 것인가? 그런데, 이 관행이야 법조인과 의뢰인 간의 거래의 문제이고 법의 틀 속이라면 법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그 법의 틀이라는 게 무척이나 허술하게 짜져 있다는 것이다. 정정훈 변호사의 얘기다. “전관예우 방지법은 있으나 마나 한 실정이 되어버렸다. 변호사법은 판검사 출신 변호사에게 퇴직 전 1년부터 퇴직한 때까지 근무한 국가기관이 처리하는 사건을 1년 동안 맡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검사장급 이상 검사나 대법관 등은 특정 관할지역이 없기에 변호사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또 마지막 근무지가 아닌 곳에서 변호사를 개업할 수 있다. 대형 로펌들 그리고 정부와 법의 비호를 원하는 대기업들도 이들을 마음껏 예우 고용할 수 있다.
전관예우 금지법은 행정 관료들에게 적용되는 공직자윤리법과 비견해서도 너무 관대하다.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전 5년간 소속 부서의 업무와 관련 있는 민간기업에 2년 동안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2011년 전관예우 금지법이 포함된 공직자윤리법이 만들어질 때 국회 내의 율사 출신들이 힘을 쓰면서 법조계에만 유리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새로운 사회의 시작, 전관예우 척결”, 한겨레신문, 2014년 6월 4일자) 전관예우의 척결 없이 한국 사회는 절대로 선진국으로 자리 잡을 수 없다는 게 정 변호사의 주장이다.
옳은 얘기지만 지금은 검찰제도 자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검찰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난 대선 국면이나 그 이후의 수사과정을 보면 심각한 수준인 정도가 아니라 (넘어서서는 안 될)도를 넘어섰다고 평할 만하다. 최근 터진 어버이연합 사건은 더 문제다. 한겨레의 김이택 논설위원 말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국 소속 유아무개(닉네임 ‘좌익효수’)씨는 야당 대선후보 단일화 뒤인 2012년 12월6일 포털 ‘다음’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문죄인 인지부조화 우리가 원하던 게 니가 말하던 게 이런 거냐?’ ‘구태정치꾼이 되어가는구나…철수○○…너도 오늘부터 구태다.’ 단일화를 비난하는 댓글을 집중적으로 올린 반면 박근혜 후보에게는 ‘역시 개간지 나는군. 우리의 여황제님이시다’ 등 호감을 유도하는 글을 남겼다. 검찰 수사팀이 정치개입 가능성이 큰 것만 추렸더니 A4 용지로 173장이나 됐다.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팀의 윤석열 팀장 등은 2013년 10월15일 밤 이런 내용들을 정리한 보고서를 들고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집을 찾았다. 그러나 명백한 선거·정치개입 증거를 보고도 “야당 도와줄 일 있냐.”며 뭉개는 태도에 실망한 윤 팀장은 이틀 뒤 독자적 판단으로 국정원 직원 체포를 감행했다. 이후 상황은 다 알려진 대로 국정감사장에서의 충돌, 그리고 윤 팀장의 좌천과 일부 검사의 사표로 끝났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청와대 정무수석실 허현준 선임행정관과의 접촉 사실을 시인하며 “이 시민단체들 다 걔 손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말했다. 청와대 행정관이 자원 봉사하는 자리도 아니니 당연히 정무수석과 그 윗선까지 보고됐을 것이다.”(역대급 사건이 될 ‘어버이 게이트’, 한겨레신문, 2016년 5월 13일자) ‘어버이 게이트’가 터지면 역대급이 될 것이라고 김 논설위원은 전망한다.
검찰의 문제점을 조망하고 개혁방안을 제시한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의 저자들은 한국 검찰의 실력(?)은 정권(대통령)을 넘어설 정도라고 한다. 무지 세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그 모멸감에 자살을 할 정도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자그마한 대안들을 제시한다. ① 법무부의 탈검찰화와 전문화, ②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③ 검찰권 분권화, ④ 검찰에 대한 사법적 통제와 시민 감시, ⑤ 검찰심급제 재고, ⑥ 고등검찰청의 폐지, ⑦ 감찰권 강화.
검찰의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검찰권이 소수 전문가에게만 맡겨져 주권자인 국민은 아무런 구실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검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만 느낄 뿐 논리적으로 그 문제점을 파악할 수 없도록 모든 게 검찰 내부에 맡겨져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한테서 나온다는 민주주의, 그리고 그 근간을 이루는 법치주의의 원리를 되새겨 볼 때이다. 검찰청법 제4조는 ‘검사의 직무’를 ① 공익의 대표자로서 ②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쓰고 있다. 법대로만 하자.
제도적으로는 검찰에 주어진 수사와 기소, 형집행권을 나누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검사동일체 원칙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검찰권을 지방으로 이양하고 검사장은 주민이 뽑도록 하는 것도 좋겠다. 기타 등등 검찰제도의 개혁 과제는 산적해 있다. 문제는 누가 고양이한테 방울을 달 것인가?
바로 이 글을 읽는 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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