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5-02 10:35
[88호] 인권포커스 - 20대 총선에 대한 단상
 글쓴이 : 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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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포커스 - 20대 총선에 대한 단상

김태근 l 어울림복지재단 사무국장



장 자크 루소는 “투표하는 날 하루만 주인일 뿐,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는 말을 통해 주권자로서의 유권자의 선택이 쉽게 잊혀지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래서일까? 언론과 정치권 등의 대다수의 예측과는 달리, 여소야대의 선거결과가 나온 지 불과 1주일이 지난 현재 정치권의 모습은 총선 민의를 수렴하기 위한 깊은 반성과 통찰보다는 마이웨이와 각 세력 간의 이전투구의 양상이 빚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집권이후 경제민주화 등의 공약은 내팽겨치고 양극화 심화와 민생의 어려움은 도외시한 채, 자신만의 정치로드맵(국정교과서 채택, 개성공단 폐쇄,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찍어내기 등)의 강행을 통해 독선과 아집의 정치를 주도한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노동계와 야당이 반대하고 있는 ‘노동개혁’의 중단 없는 추진을 강조하며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새누리당도 예외는 아니다. 공천과정에서의 진박감별을 둘러싼 갈등, 유승민찍어내기, 논란과 갈등의 당사자들에 대한 비례대표 선정 등의 문제가 부메랑이 되어 과반의석은 고사하고, 제1당의 위치를 더불어민주당에게 헌납하고도 탈당자들의 복당을 둘러싼 갈등과 비대위 구성을 둘러싼 논란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야당 또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수도권에서의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최선이 아닌 차선 또는 차악)으로 제1당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역시 호남에서의 패배와 정당투표에서의 국민의당에게 뒤진 결과에 대한 냉정한 분석 보다는 차기 당권과 대권후보를 둘러싼 갈등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서 최대의 성과를 얻은 국민의당 역시 정돈되지 않은 당선자들의 튀는 발언과 호남당선자들과 안철수대표 세력간의 당권을 둘러싼 갈등이 내재화 되어 있는 형국이다.


17대 총선부터 12% 정도를 유지했던 진보정당들의 득표율 합계는 9%(정의당 7.23%, 녹색당 0.76%, 노동당 0.38%, 민중연합당 0.61%)정도로 줄어들어 진보정당 진영의 상황은 더욱 힘겨워 보인다. 영남에서의 당선자배출(김종훈, 노회찬, 윤종오)이란 성과는 있었지만 이는 진보후보들의 독자적인 활동의 결과물이기 보다는 지역사회의 야권연대에 대한 노력과 성과 그리고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의 결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국민의당의 3당 등장으로 당초 진보정당 진영이 생각하는 정치구도(보수/중도/진보)가 상당히 위축된 판세이다.

20대 총선의 결과 대한민국의 정치는 과반의석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각 정당간의 협치의 정치력을 시험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각 정당의 실력은 2017년 대선이란 공간에서 다시 한번 유권자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애초 이렇게 쓸려고 시작된 글이 아니었는데, 뭔가 20대 총선이후의 정치지형에 대한 평론의 글처럼 흘러가고 있다.

각설하고 4월 13일, 개표방송의 시작과 함께 발표된 출구조사의 결과 ‘여소야대’의 예측을 보며, 기쁜 한편으로 당황스러웠다. 선거 1주일 전의 여론조사 전문가들과 각 정당의 발표에서 나온 새누리당 최소 160석 이상의 과반 장악이란 결과가 어찌 1주일 만에 이런 결과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종편을 비롯한 언론지형의 우편향과 야권분열 등의 상황은 새누리당 과반 또는 180석 당선도 가능할 것이란? 불길한 예측, 나 역시 그런 불길한 예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

최종 결과를 보며 우선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한 국가의 시스템이 이래도 되나?’란 생각이었다.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의 부족한 부분(대표되지 못하는 소수의 의견)을 채우기 위해 보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여론의 향배를 읽어내고 이를 정책으로 반영하는 노력일진데, 시스템의 미비(휴대전화가 아닌 유선전화의 한계)만으로 이번 사태를 해석하고 무마하려는 여론전문가들과 이를 그대로 앵무새처럼 재생하고 있는 언론, 그리고 항상 민생과 민심을 이야기 하면서도, 정작 민심의 흐름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를 간파하고 있지 못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한계를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시스템의 보완에 앞서 각자가 서있는 위치에서의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2008년 이후 세계경제의 침체와 함께 등장하고 있는 부의 집중과 양극화 심화 문제와 관련하여, 새로운 정치적 흐름으로 등장하고 있는 좌파들의 약진이 부각(영국노동당의 제레비 코빈의 당대표 당선,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의 버니 샌더스의 등장)되고 있다. 그들은 그동안 축소되었던 정부의 역할과 자본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최저임금을 넘어선 생활임금 정책의 부각, 보건·의료·교육 분야 등에서의 정부역할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인 빈곤율, 자살율, 부의 양극화 등 각종의 사회경제적 지표에서 OECD국가의 최하위에 머물러 ‘헬조선’, ‘흙수저 금수저 논란’ 등이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20대 총선을 통해 이런 흐름과는 상반된 방향으로 중도화의 경향(국민의당 진전, 더불어민주당의 우편향, 진보정당의 약화 등)이 강화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결국 ‘오만과 독선’에 대한 심판에 앞장선 유권자의 선택지가 사회양극화의 해결을 위한 최저임금의 현실화 등의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의 강화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성찰과 반성을 통한 정치개혁(정당명부식 비례대표의 도입 등)과 함께 ‘투표하는 날만 주인이 아닌 일상에서의 주인으로 대접받기 위한 치열한 일상의 정치, 생활의 정치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넘는 직접 민주주의를 보강하기 위한 과제를 20대 총선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은 과연 나만의 생각일까?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4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