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인권도서 -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 저/ 양영란 역/ 갈라파고스
요약 : 이영환
선거일이 다가오면 온 나라가 들썩들썩한다. 정당 내 에서는 공천권을 얻기 위해 경쟁이 벌어지고, 후보자들은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며 선심성 공약들을 내놓는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반 국민들과 대표자들 사이에 큰 벽이 자리 잡는다. ‘선거’ 라는 다수의 뜻이 반영된 제도로 공권력을 부여 받았으니, 자신들의 행동은 곧 국민들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정당화와 함께.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뜻을 행사하는 가장 대표적인 제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렇지 않다. 직접민주주의가 행해졌던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는 시민들 모두가 참여하는 토론이 자유롭게 행해졌고, 대표자들은 제비뽑기로 선출했다. 선거가 도입된 것은 미국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이후였고, 소수 특권층에게만 제한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 비민주주의적” 이고 “과두정치적” 이었다.
그리스에서 이루어진 제비뽑기의 경우, 대표자들의 재임기간을 제한하고, 웬만해선 연임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정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선거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대의민주주의 하에서는 선거불참과 정치적 무관심, 정당들의 과도한 경쟁, 선거 기간에만 반짝하는 열기, 당선을 위한 정치적 부패 등의 정치적 병폐가 발생하고, 사람들은 만성적인 “민주주의 피로감 증후군”을 겪고 있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선거’ 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인구수가 적고, 지리적 범위도 넓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졌던 직접민주주의에서나 가능할 제비뽑기를 현대에 실시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게다가 무작위로 대표자가 선출되면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입법이나 행정 업무를 제대로 담당할 수는 있을까? 선거제도에 이미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제비뽑기는 ‘운’ 에 의존하는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누가 뽑힐지 알 수 없는 이 ‘무작위함’ 이 “최대한 많은 수의 시민들을 나라살림에 참여시키고 이를 통해 평등을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제도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민주주의 체제의 기본 원칙은 ‘자유’ 인데 이를 위해서는 “번갈아가면서 통치하는 자가 되고, 통치 받는 자가 된다는 것이” 가능해져야하고, 그것이 바로 모두가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이념에도 합치된다.
선거 제도가 민주주의 정신을 잘 구현할 수 있는 ‘절대선’이 될 수 없었듯 제비뽑기 제도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저자는 제비뽑기라는 우연적 방식과 선거라는 효율적 방식을 함께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전문성에 대한 우려는 오랜 기간의 토론을 거쳐 사안에 대한 충분한 숙의를 거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외국 여러 나라의 사법부에서는 제비뽑기에 의한 배심원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일이 아닌 다른 것에 신경을 쓰도록” 함으로써 개인적 이기주의와 싸울 수 있는 배심원 제도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르기 위한 좋은 학습의 장이다. 마찬가지로, 제비뽑기 제도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의 범위를 넓혀 최대한 다양한 배경과 계층을 지닌 사람들이 입법 제도에 참여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치면, 대의민주주의로 인해 소수에게 독점된 민주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2016년, 4월 우리나라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계속하기 위해 이권 다툼을 하고, 많은 투표수를 얻어 대표가 되었다는 이유로 충분한 토론을 거치지 않고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제비뽑기 제도가 실현하려는 평등과 자유의 가치를 다시금 새겨보고, 선거를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를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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