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2-29 11:55
[86호] 인권포커스 - 가족, 과연 안전한가?
 글쓴이 : 현진
조회 : 9,557  

인권포커스 - 가족, 과연 안전한가?

송혜림 l 이사



엄마는 나를 사랑합니다 기분 좋을 때만
아빠는 나를 좋아합니다 말 잘 들을 때만
엄마아빠는 나를 예뻐합니다 남들이 볼 때만


아동학대 관련 공익광고에 등장하는 문구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의 80% 이상은 부모로부터 나온다 하고, 최근 들어 등장하는 자녀 유기, 학대, 살해 등의 사건을 보면, 바야흐로 우리 가족이 과연 삶의 안식처고 휴식처이며 정서적 안정을 주는 생활의 기본 단위인지 의문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나지요.

가족의 안전은 일상생활이 가능한 주거환경과 경제적 토대를 기본으로 매우 다양한 요소의 영향을 받는데요, 그 중에 핵심은 건강한 부모역할 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신체적·정서적 성숙이나 경제적 독립 차원에서 자기 스스로의 돌봄이 가능하지 않은 미성년 자녀는 가정에서 분명 약자이고, 따라서 일정한 기간 자녀를 돌보는 부모역할이 전제되어야 자녀의 건강한 성장발달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면에서 최근 방송되는 드라마 시그날, 작년에 방송되었던 킬미 힐미 등에는 부모를 통한 아동학대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잘 나타납니다. 2011년 개봉된 영화 쿵푸팬더2를 보면, 화포를 사용하여 세상을 정복하려는 악의 상징인 공작(셴) 그리고 내면의 평화를 갖고 이와 맞서는 주인공 포와의 대립을 주로 기억하실 테지만, 사실은 공작 셴이 어릴 적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 정서적 상처가 이 영화의 모티브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자녀에게 건강한 부모역할이 중요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가족마다 사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맞벌이 가정은 부모역할을 충분히 할 만한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한부모 가족은 엄마 혹은 아빠 중 한 사람이 부모역할을 수행해야 하니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조손가족 역시 할아버지 할머니가 부모역할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고, 다문화가족은 언어나 문화의 차이가 부모역할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겠지요. 가정을 둘러싼 환경과 사회구조의 변화 또한 매우 역동적이어서 삶의 표준이나 가치관 등도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부모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이 건강한 부모역할인지 제대로 알기도 힘든 상황이고요. 공사의 분리를 특징으로 하는 시민사회에서, 가정은 사생활의 공간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힘든 구조도 있고요.
돈과 시간, 주거 등의 자원 부족과 함께 주위에 믿고 의지할 만한 지지체계가 취약한 집단의 경우 부모역할을 회피하기도 하고, 학대나 방임/유기와 같은 방식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지요. 자신보다 더 약한 상대에게 화풀이를 하는 악화된 태도가 부모자녀 관계에서도 발생할 수 있겠고요. 이런 방식으로 가정은 다른 어떤 곳보다 더 안전하지 않은 곳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날마다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가정이기 때문이지요.

가족 간에 행해지는 신체적·정신적·언어적 폭력, 학대, 방임, 유기와 같은 가족문제는 한 번 발생하면 그 해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완벽한 치료 자체가 불가능한 특성을 갖지요. 그래서 많은 국가들은 가정폭력에 대해 타인 간의 폭력보다 더 엄중한 처벌을 하기도 하고요. 따라서 가족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빈곤이나 실직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안전망을 다시 정비할 필요도 있겠고,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그래서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혹은 체벌을 자녀훈육의 한 방법이라 생각하는 가치관 자체도 다시 검토해야 하고, 아동에 대한 폭력이나 학대에 대한 민감성도 더욱 높여야겠지요.

다른 한 편으로는 건강한 부모역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지요. 때리고 방치하는 것만 학대일까요? 공부 하라고 충분히 잠을 안 재우는, 한국말도 제대로 모르는 어린 자녀에게 외국어 학습을 시키는, 자녀의 개성과 희망을 무시하면서 엄마아빠 못 다한 꿈을 이루라는, 친구관계고 인성이고 그것보다 성적이 더 중요하다는, 이는 제가 부모교육이나 아동청소년 상담 현장에서 직접 듣고 본 사례인데요, 이런 류의 부모행동은 과연 어떤가요? 저는 당연 억압이며 학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새벽까지 초등생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한 엄마의 과도한 교육열이 이혼의 사유가 된다는 법원의 판결은 부모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요. 다 너 잘 되라고, 너 위해서 라고 많은 부모들은 말합니다. 그런데요, 혹시 사실은 부모인 나를 위해, 내 욕심과 체면 때문에, 나 편하자고 는 아닌지, 저부터 다시 돌아봐야겠습니다.
긴급하게는 자녀에게 가해지는 폭력, 학대, 유기, 방임에서부터, 더 넓게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과도한 집착, 충분히 자고 먹고 놀고 쉴 수 없을 정도로 공부를 강요하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데까지... 아동인권 차원에서 더 예민한 감수성으로 우리 사회에 문제 제기를 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