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둘 - 바다와 사람
이영은 l 회원
초등학교 3학년 때 대구에서 울산으로 이사 와서 한참동안 별로 정을 못 붙였던 기억이 난다. 대구에 살 때는 걸을 수 있는 위치에 MBC 방송국, 극장, 백화점 그리고 많은 상점들이 있어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은 것에 비하면, 이사 온 곳에는 그다지 볼거리도 즐길 거리도 없었다. 게다가 그전 다니던 학교엔 큰 분수대도 있고 체육관도 있어, 어린나이에도 괜한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사 후 즐겁지 않았던 3학년 1학기 보내고 여름방학을 맞아 부모님과 처음으로 놀러가서 본 바다, 그것으로 인해 다시는 내가 나고 자랐던 곳만을 동경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지척에 있는 바다는 그 당시의 어린 나에게 그자체로 충격이었다. 그때까지 풀장(그때는 물론 파도 풀 같은 것도 없었다)밖에 가보지 않았던 나는 처음 본 푸른 바다에 그림처럼 서 있는 등대와 어선들, 부서지는 흰 파도와 하얀 갈매기 떼의 놀라운 기억으로 지금은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바다인데도 볼 때마다 내 가슴을 “쿵”하고 울려준다. 고장의 자랑거리를 쓰려고 했는데 이러다간 바다 이야기만 하고 끝내지 싶어 이제부터는 다른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아참, 그 바다 옆에 있는 제주도 어느 길 못지않은 대왕암 둘레길과 바다로 연결되는 호수공원, 그리고 주변의 멋진 산들도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건 글을 읽는 분들의 상상의 맡겨본다.
울산 동구에서 내가 제일로 자랑 하고 싶은 건 부지런 하고 건강한 노동자들의 도시라는 점이다. 아침 6시30분에서 7시30분에 현대중공업 여러 개의 출입문 앞에 가보면 실로 엄청난 광경과 만나게 된다. 수백 대의 줄지어 있는 오토바이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어느 단체에 운영위원을 맡고 있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출입문으로 유인물을 들고 나가 요즘의 신문에서는 아예 볼 수 없는 내용이 실린 글을 노동자들에게 전달하곤 하는데, 전국 어디에서도 이렇게 유인물을 잘 받아 챙겨가는 노동자들이 없다고 생각 한다.
보통 이렇게 노동조합이나 다른 단체 혹은 상품광고를 하는 업체에서도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몇 개씩을 나누어 줄때가 많은데, 이곳 노동자들은 신호 대기 중 오토바이에서 손을 빼서 한 개라도 놓칠세라 다 받아 챙긴다. 자전거를 타고 스쳐가는 노동자들도 위험 할 듯싶은 데도 유인물을 빼앗듯 챙겨 가는가 하면 미처 나눠드리지 못한 분들은 바닥에 놓여 있는 유인물을 알아서 챙겨 가기까지 한다. 아마 이런 모습은 전국 어디서도 볼 수 없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오랫동안 습관이 배어 있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이명박, 박근혜정부로 이어지는 통제된 언론 속에서 이런 유인물은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소식통이며 알권리를 채워 주는 귀한 인쇄물이기에 단 한 장도 버려지는 일이 없는 듯하다. 누군가는 뭐 이런 내용이 다 자랑거리인가 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유인물을 잘 챙겨보는 노동자들의 힘으로 회사 측에서 온갖 관리 방법을 동원하여도 이제 어용노조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어용노조라 하더라도 겉으로 최대한 투쟁성이 보이려고 포장하여 선거를 하는데 현명한 노동자들이 제대로 판단하여 지난해 말에 치러진 노동조합선거도 당연히 민주노조가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부지런하고 건강하고,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소주한잔 기울이는 따뜻한 노동자들의 도시, 울산 동구가 그래서 나는 너무 자랑스럽다.
다음으로 동구 자랑거리는 노동자의 도시 울산 동구가 전국적으로 가장 먼저 주민운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제 20년의 역사가 되어가는 동구주민회는 전국 최초로 주민참여 예산제를 끌어내왔고, 의회직접 방청 모니터링을 전국 최초로 만들어 냈는가 하면 지방정치 견제의 역할과 지역의제 발굴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지금은 각 동네마다 동 주민회로 확대하여 더욱 주민들과 가까이에서 함께 주민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또한 울산여성회 동구지부도 20년 동안 굳건히 동구 여성들의 올바른 정치참여와 권익보호를 위해 여성, 아동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동아리 운영과 지역 아동센터 및 각종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주민회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각 동네마다 여성회를 만들어가며 열심히 활동 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단체이다. 울산 전 지역 중에서도 봉사자가 가장 많은 곳이 울산 동구일 정도로 이밖에도 많은 단체와 협동조합, 마을기업이 있는 점이 이곳의 또 다른 자랑거리이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또한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니 만큼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과 건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울산 동구는 이젠 내가 태어나서 유년기에 살았던 고향보다 훨씬 더 사랑하는 고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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