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2-01 13:59
[85호] 인권포커스1 - 내사의 의의, 그리고 피내사자의 지위
 글쓴이 : 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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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포커스1 - 내사의 의의, 그리고 피내사자의 지위
배미란 l 회원



요 며칠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날씨를 소개하는 기사에서는 한파, 혹한을 넘어 최강 한파, 북극 한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표현들을 동원하여 요즘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날씨 속에서 눈길을 끄는 기사가 또 있습니다. 최근의 한일 위안부 협상 결과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모임인 ‘한일협상 폐기를 위한 대학생 대책위원회’ 소속 대학생들이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막겠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제가 자주 만나는 친구들 또래의 또 다른 친구들이 노상에서 매서운 찬바람을 견디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기사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이라 함) 위반 혐의를 적용해 출석 요구서를 보냈고, 이들이 피내사자 신분으로 1시간가량 조사를 받았으나 조사에서 전원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연합뉴스, “'평화의 소녀상' 집회 대학생 경찰조사…묵비권 행사(종합)”, 2016. 1. 21.자 참조). 기사를 다 읽고 나니 찬바람 속에 앉아 있는 친구들의 모습은 뒤로 물러나고, 습관적으로 구성요건, 위법성, 책임이 떠오릅니다. 형법에서 다루는 범죄란,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위법하며, 책임 있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행위가 법률에 의하여 처벌되는 행위인가를 판단할 때에는 첫 단계로는 법에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정해놓은 행위를 한 일이 있는지, 아니면 법에서 따라야 한다고 정해놓은 행위를 하지 않은 건 아닌지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는 이와 같은 범죄 구성요건이 인정되는 경우라도 정당행위나 정당방위 등과 같이 어떠한 특수한 상황 내지는 조건 하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위법하지 않다고 하여 처벌받지 않게 될 가능성은 없는 지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이 자신이 한 행위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지,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을 비난할 수 있을 지를 판단하게 됩니다.
즉, 어떠한 행위가 처벌될 수 있는 행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사에서 나와 있는 단 몇 줄 만으로 이들의 행위가 처벌될 수 있다, 내지는 처벌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그리 옳은 판단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한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후에도 계속 마음속에는 석연치 않은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집시법 “위반 혐의”, 그리고 “피내사자” 신분이라는 표현들과 “피내사자에 대한 출석요구”라는 점 때문입니다. “내사”의 구체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기 전에 단순히 국어사전 만 확인해도, 내사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게 몰래 조사하는 것, 또는 일정한 조직체 내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이론적으로도 내사의 의의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내사란, “수사기관이 피내사자의 범죄혐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하여 행하는 범죄인지(입건) 전의 은밀한 조사활동”이라고 이해되고 있습니다(조광훈, 수사기관 내사의 문제점과 법적통제에 관한 연구, 법학논집 제16권 제3호, 2012, 187면 참조). 내사와 수사를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뉠 수 있겠습니다만, 이와 같은 내사의 기본적 의의만을 떠올려 봐도 행위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주관적 혐의에 의하여 개시되는 수사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사 단계의 피내사자들은 아직 수사기관에 의한 주관적인 혐의조차 없는 상태라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에서는 간단하게 “집시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여 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또한 내사는 “은밀한” 조사활동이어야 함에도 이들에 대한 출석요구서가 발부되었다는 사실은 위의 기사 이외에도 상당수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만을 읽은 사람들은 이들이 무언가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다는 편견을 갖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사기관의 내사나 피내사자의 지위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요?


피내사자의 인권보호나 지위에 관심을 갖는 분들 중에서는 피내사자의 법적 권한에 대한 명문의 규정이 부족하여 피고인이나 피의자가 누리는 헌법적 내지는 형사소송법적 권리를 향유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내사 단계의 피내사자들은 아직 수사기관에 의한 주관적인 혐의조차 없는 상태이고, 그 지위에서나 권리의 측면에서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수사기관의 내사권 역시 대·내외적으로 폭넓게 인정되는 권한이 아니라 수사의 전 단계에서 필요최소한으로, 피내사자의 어떠한 권익도 침해하는 않은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당사자에게 피내사자로 지목되고 있음을 공공연히 알려 심적 부담을 가중시키거나, 집회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굳이 출석요구를 하여 집회나 시위 등을 방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내사의 근본적 의의나 취지에 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이 내사권의 범위나 한계를 좁게 바라본다면 원활한 수사가 힘들 것이라는 비판적 견해를 가지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수사이기 때문에, 수사를 담당하시는 분들이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시위를 하는 친구들은 각자가 원해서 하는 고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각자의 행동에 따른 일정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출석요구서가 발송되는 일이나, 불필요한 조사를 받으면서 개인의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나, 그와 관련된 내용이 계속적으로 보도되는 일 등은 당연하다거나 옳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보셨습니까?
올 겨울, 최강 한파 속에서도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면서 마음속에서 훈훈함을 느끼신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쌍문동 친구들처럼 밝게 웃는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누군가의 자녀이자, 학생이고, 친구인 그들에게 건네지는 것이 출석요구서가 아니라 “이 추운 날씨에 건강이라도 잘 챙기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이기를 기대해 봅니다.



※ 글을 보내주신 배미란 회원님은 현재 울산대학교 법학과에서 형법을 가르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