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포커스2 - 모두가 누리지 못하는 누리과정
차한아 l 교사
2010년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내건 무상급식 공약에 이어 무상복지가 정치권의 화두가 되고 있을 때 누리과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이명박 정권은 “만 5세 아동은 어떤 교육기관에 다니든 똑같이 질 높은 교육을 받게 하겠다.” 며 누리과정이라는 이름의 무상보육을 무상급식의 대항마로 들고 나왔다. 누리과정이란 공통교육과정을 만들어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과정을 하나로 통합하고 부모들의 교육비 부담도 줄여주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짧은 준비기간으로 인해 교육과정 및 재원 마련의 허점을 드러내며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현장의 평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12년 만5세를 대상으로 한 누리과정이 처음 시행되었다. 한 발 더 나아가 2013년부터는 만3~4세까지도 확대 적용되었고,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만3~4세뿐만 아니라 만0~2세까지도 보육료를 지원하는 ‘0~5세 보육 및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이 되었다.
문제는 누리과정을 도입하면서 재원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부담하게 한데서 시작되었다. 국공립유치원의 경우 매월 유아학비 6만원과 방과후과정비 5만원을,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경우에는 매월 유아학비 22만 원과 방과후과정비 7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매년 내국세 수입의 20.27%를 교부금으로 각 교육청에 배부하고 있는데 이미 일정하게 정해진 금액 안에서 정부의 정책에 따라 연간 4조원 규모의 누리과정 예산을 집행해야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고 매년 갈등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2015년에는 일부지역에서는 국고 5064억원과 지방채로 약 1조원을 발행해 충당하였지만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빚만 늘여놓은 것이 되었다.
교육부는 2015년에는 3세 유아의 지원 예산을 교부금으로 부담해 전체 3~5세 누리과정에 필요한 예산 전액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지원하였다 한다. 2016년도 누리과정 총 금액은 약 4조 원으로, 유치원은 약 1조9000억 원, 어린이집은 약 2조10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지난해 10월 교육청별로 유치원과 어린이집 누리과정에 필요한 금액을 전액 교부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교육청은 원래 정해진 교부금 총액을 배부한 것이지 누리과정을 위한 별도 금액을 배부한 것이 아니며, 유치원의 경우는 유아교육법에 따라 교육청이 책임을 지지만 어린이집의 경우 보육을 책임지는 보건복지부에서 관리 감독 및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교육청으로 예산편성을 넘기는 것도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라 주장한다.
교부금은 전 교육기관의 인건비와 시설관리비 등 기본적인 지출을 감당하는 비용일 뿐만 아니라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지는 엄연히 교육청 재량에 달렸음에도 교부금 시행령에 따라 누리과정 비용을 강제하라는 횡포를 부리는 것이다. 이미 누리과정은 계획단계에서부터 지방정부가 떠안게 될 재정적 부담이 문제가 되었고 해마다 교육청과의 갈등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일방적으로 정부의 정책이고 법이니 무조건 따르라며 밀어붙이고 있다.
최근 SNS에 올라온 비유의 글을 보면 더욱 이해가 쉬워진다. 서울 사람이 돈이 없어 점심을 굶고 있는 시골노인을 보고 자장면을 시켜서 배달원이 자장면을 가지고 왔다면 누가 자장면 값을 지불해야할까? 당연히 서울 사람이다. 정부의 주장대로 담뱃세 등 세수가 늘어 지방자치단체의 돈이 늘어나 배달원의 수입이 늘었다고 배달원이 자장면 값을 지불해야할 의무는 없다. 지금 보육대란은 정부가 배달원에게 자장면 값을 내라고 하는 형국인 것이라 한다.
교부금에서 누리과정예산을 편성하다보니 기존의 교육 현실이 더욱 더 열악해지고 있다. 현재 학교현장은 누리과정 재원 마련 등으로 교육시설 및 교육환경에 드는 재원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지방재정교부금이 2015년 49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교부금은 정부의 잘못된 세수예측으로 10조원이나 부족한 39조가 배부되었다. 그 결과 교육사업예산은 축소되는 데 비해 누리과정 사업비만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유치원 방과 후 운영비가 95% 삭감되고 한 여름에도 찜통교실에서 생활하는 등 초중고 아이들을 위한 각종 교육사업도 축소되었고 더불어 교육청 지방채무도 급증하였다.
보육대란 위기감이 촉발되어 연일 전국이 시끄러운 이 때, 우리 울산은 별 차질 없이 보육료가 지원될 전망이다. 김복만 교육감은 여름방학 중 유치원 교사들의 연수장에서 전국에서 유일하다며 유치원 원장과 교사들 앞에서 “어린이집 원장님과 선생님들은 누리과정 지원비 걱정하지 마라”고 자랑을 하는 추태를 보였다. 과연 울산교육감은 누리과정을 우선으로 편성해도 될 만큼 울산교육청의 재정도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울산지역 누리과정 보육료 확보는 전국 시·도 중 가장 높다. 전국 17개 교육청 중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확보하고 12개월 전액을 예산 편성한 교육청은 세종, 울산, 대구 등 6곳이다. 많은 교육청이 정부안대로 전액 예산을 잡지 못하고 50~70% 예산만 편성한 것으로 보면 지방교육청 재정이 열악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개탄할 노릇은 정부가 소송운운하며 교육청을 압박하는 것도 모자라 ‘먹튀’ 운운하며 원색적 비난만 할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2015년 2016년이 문제가 아니라 2017년 2018 년 이후로도 갈등이 예상되며 그 와중에 어린 유아를 둔 부모들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고 저출산 문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게 된다. 2011년 12월 TV토론회에서 “보육사업처럼 전국단위로 이루어지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 “아이 기르는 비용은 국가가 지불하겠다.” 라고 말했듯이 누리과정이 교육청과의 갈등 없이 지속가능한 정책이 되도록 정부가 노력해야한다.
또한, 단순히 교육청과 교육부의 돈을 위한 힘겨루기로 잘잘못만을 따지는 언론에 휩쓸리면 안 된다. 중앙정부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절차가 관행이 되면 앞으로도 국가가 정한 의무사업이 지방자치단체 및 시도교육청의 행정과 재정을 또 다시 흔들 수 있다는 것이고 지방자치와 교육자치는 무늬로만 존재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 글을 보내주신 차한아 님은 길천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교사이십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유치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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