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2-01 13:04
[85호] 이달의 인권도서 - 자발적 복종
 글쓴이 : 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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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권도서 - 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 심영길·목수정 옮김 / 생각정원 / 2015
요약 : 오문완


1548년에 작성된 이 짧지만 위험한 격문 《자발적 복종》은 프랑스 보르도의회 고등재판관으로 재임한 라 보에시(?tienne de La Bo?tie)가 오를레앙대학교에 입학할 때인 18살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자는 1574년 절대왕정의 저항세력 모나르코마크(Monarchomaques)에 의해 처음 발간되고, 이후 프랑스혁명과 아나키즘운동, 시민불복종운동에 영감을 제공한다.
《자발적 복종》은 ‘왜 사람들은 복종하는가?’ 라는 한 청년 법학도의 질문에서 시작되어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은 물론 정치철학의 핵심 사상을 제공한 격정적 논설이다. 라 보에시는 복종의 가장 큰 이유가 ‘습관’이며 자유에 대한 ‘망각’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절대권력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그 오랜 습관이 이어져오면서 종속의 상태를 받아들인 부모 밑에서 자란 후세들은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자유’를 알아보지 못하고 종속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 책의 공역자인 목수정은 “복종할 것인가, 자유로울 것인가”라는 제목의 역자 서문에서 “자유를 애써 쟁취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주어져도 참기 힘들어하는 민중은 끊임없이 독재와 파시즘의 출현을 허락한다. 바로 거기에 인류의 비극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책, 25쪽). 공역자 심영길은 “반공주의는 독재정권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다”라는 역자 후기에서 “사회적 질서란 통치 세력과 피통치 세력(시민) 사이에 균형관계가 성립되어야 존재하는 것이다. 통치하기 위해 질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의미 있는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통치력을 동원해야 한다. 질서가 정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질서에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책, 148-149쪽)라는 까뮈의 말을 인용한다.
책의 몇몇 구절을 읽어보면서 라 보에시의 생각을 더듬어본다.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자.

군주
민중이 독재자에 대한 굴종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독재자는 스스로 무너진다. 그에게서 무엇을 빼앗을 필요도 없다. 단지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 된다. 나라가 그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다. 단지 자신의 이해에 반하는 짓만 안 하면 된다.(46쪽) 그대들 스스로가 그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무슨 힘으로 그대들을 지배할 수 있었겠는가?……그대들은 그가 더럽고 비열한 쾌락에 파묻혀 호의호식 하도록 온갖 고역에 자신을 길들이고 있다. 그대들은 자신을 속박한 굴레를 더욱 잡아당겨 독재자가 더 강하고 가혹하게 군림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약자로 만들고 있다. 오직 강하게 원할 때만 그대들은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

자유
자유를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단지 그것을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된다. 단지 그것을 원한다는 의지만이 필요하다는데, 이 단순한 희망만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인데, 그것을 너무 비싼 대가라고 부를 사람이 있을까? 세상 어느 누가 피의 대가를 치르고라도 다시 사 와야 할 만큼 소중하며, 그것을 잃었을 때 모든 존엄한 삶을 참혹한 것으로 만들고 오히려 죽음을 자청하게 하는 소중한 자산(즉, 자유)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후회하겠는가?(47-48쪽)

우정과 이성-오성, 자연
‘우정’이라고 하는 공동의 의무에 인생의 중요한 한 부분을 의지하며 사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 중 하나다. 미덕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행동을 높이 평가하며, 우리에게 베풀어진 선행에 감사를 표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들의 명예와 그의 미덕을 더 높이기 위해 우리의 사소한 만족이 줄어드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다.(38쪽) 이성이라는 씨앗은 좋은 말과 바른 태도에서 자라나면 미덕으로 꽃을 피운다. 반대로 악행과 마주치면 질식하고 사산되고 만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복종하는 백성이었다고. 조상들도 그렇게 살아왔으며 그 고통을 참고 견디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고, 이대로 자손을 낳으며 살아야 한다고. 그들은 심지어 복종 상태가 지속된 시간의 길이를 통해 그들 위에 군림하는 폭군의 지배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은 결코 악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폐해를 늘려갈 뿐이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들을 짓누르는 멍에의 무게를 느끼고 그 무게를 떨쳐버려야 한다고 각성한 몇몇 인물이 사람들 속에서 반드시 등장하곤 했다.……반듯한 오성과 맑은 정신을 지닌 이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발치 앞만을 바라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들은 사안의 전후를 살피는 데 주의를 기울이며,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통찰하기 위해 과거를 떠올린다.(82-83쪽) 자연은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가 가진 생각을 교류하며 우리의 일치된 의견을 함께 나누게 하면서 우리를 하나로 모이게 한다. 자연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우리가 연대하게 하며, 우리 사회가 더 강한 결속과 매듭을 갖게 한다.

그래서?
그러니 배우자. 옳게 처신하기 위해 우리는 배워야 한다.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하자. 우리의 명예를 위해, 우리의 미덕에 대한 사랑과 전능한 신에 대한 사랑을 위해. 그는 우리가 일삼은 행위의 어김없는 증인이요 우리가 저지른 잘못의 공정한 심판관이니. 관대하고 온유한 여호와는 독재와는 정반대에 속하는 분이니. 그분은 독재자들과 그의 공범들은 지옥에서 따로 특별한 형벌에 처하리라고 분명히 믿어 의심치 않는다.(1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