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톡 속의 아이들
_____김경옥 l 회원
집으로 향하는 차안. 라디오에서 가상 톡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스마트폰에서 가상 톡 앱을 다운받아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고 대화를 하는 거란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인기라고..
'참 의외다'생각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와 앱을 깔고 실행해 보았다. 우리 집에도 대학생과 중3인 아이가 있는데 뭔 말을 시키면 어떠한 질문에도 “응”, “아니”, “글쎄”, “모르겠는데” 그냥 따위로 일관한다. 어떻게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지 한편 신기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더욱이 직업상 중학생들을 많이 만나는지라 아이들이 만사가 귀찮아 말을 거는 것도 대답하는 것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가상 톡은 상당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헐! 뭐야! 이건~? 그럼 그렇지.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친구들과 부대끼고 때론 갈등하면서 그 속에서 사랑과 배려 존중을 배우고 고민하기보다, 가상의 인물과 임의로 설정된 관계를 즐겨하는 것에 한번 놀래고, 대화내용처럼 싸구려 말장난정도의 대화만으로도 위안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아이들의 맑고 아름다운 영혼에 이따위 허망한 것들을 채워 넣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하다. 아이들이 인터넷게임에 빠져드는 것도 게임이 주는 재미만이 아니라 게임 속에서만 친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하긴 오죽했으면 친구를 찾아, 말벗을 찾아 가상의 공간을 헤매겠는가? 구르는 낙엽에도 까르르르 웃음보를 터뜨리고, 친구와 헤어지기 싫어서 아랫목 이불속에서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삼매경에 빠졌던 그만 때의 우리와 지금 아이들이 다르면 또 얼마나 다르랴!
허망한 가상의 공간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이야말로 얼마나 경청과 공감에 목말랐겠는가? 어느 날 밤 창문을 톡톡 두드려 가슴을 뛰게 했던 어릴 적 내 친구들처럼 누군가 다가와 마음의 창문을 두드려주기를, 가슴속에 간직한 두근거리는 설렘과 아린 아픔, 기대와 불안으로 뒤섞이는 미래……. 할 말이 너무 많아 차마 꺼내지 못하는 그 숱한 얘기들을 꺼내어 나누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위하는 척, 걱정하는 척 하는 그 수많은 잔소리보다 따뜻이 귀기울여주고 토닥여주는 한마디 말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건 아닐까? 그들보다 좀 더 대화의 스킬이 뛰어난 누군가가 자신들의 생각과 하고 싶은 말을 미리 헤아려 서툰 길 따뜻한 손잡아 이끌어주고, 더 높이 더 멀리보라고 허리 안아 들어 올려주길 애타게 기다리는 게 아닐까? 가슴이 먹먹해온다. 많이 보듬어주고, 먼저 손 내밀어주고, 눈높이를 같이 하며, 때론 머리도 끄덕이고 손뼉도 쳐가며 맘을 나누는 일이 왜 이리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을까?
오늘도 내 페이스북 속 친구들은 세상을 향한 사랑과 아픔이 담겨진 글을 올려놓고 있다. 건강한 지구를 향한 열망이 담긴 글도 있고, 우리아이들의 교육을 걱정하는 이의 글도 있다. 앞으로 우리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향한 그림을 그려놓고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이들도 있다. 우리 아이들도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과 맘을 나누길 바래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시간이다. 어른들이 뭔가 완성된 것을 아이들에게 주려하기보다 미완성이지만 나누고 공감하며 함께 찾아가는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봄은 어떨까?
올여름은 참으로 징그러울 만큼 더웠다. 하여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 한줄기에도 가을임을 실감하고 이 가을이 이토록 가슴 뛰게 아름다우리라. 현실은 여전히 지난여름 그 숨 막히는 무더위처럼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참으로 힘겹고 막막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공감과 소통, 나눔의 아름다움이 있기에 가을 볕 아래서 눈이 부시게 빛나는 저 은행잎처럼 가슴속에 자그마한 희망하나 품어보는 것은 지나친 낭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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