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1-06 09:39
[82호] 편집 후기
 글쓴이 : 김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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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받을 용기
__________________편집위원회

“저는 솔직히 노동자 편입니다.” 한 신문사 임원 면접에서 한 말입니다. 제 자기소개서에서 인권운동연대 인턴 활동을 본 사장이 “노동자와 사측 중 하나만 골라라. 어느 편이냐.”라고 물어보더군요. 면접 분위기가 좋았기에 내심 합격을 기대했으나,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은 없었습니다. 면접 결과를 확인 후 ‘노동자 편을 들어서 그런가’라는 의구심이 줄곧 떠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 편’이라는 답변이 결정적인 탈락 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이 두 번째이기에 사상검증에 대한 걱정은 기우가 아닌 듯합니다. 수개월 전 한 방송사 면접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고, 역시 불합격을 했었습니다. 지원자가 실력이 아니라 생각으로 걸러질 때, 애지중지했던 활동들에 색을 입힐 때만큼 허망한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 면접에서는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지 걱정마저 듭니다. 비단 이런 걱정이 저만의 것은 아닙니다. 언론인 지망생들 사이에는 ‘면접에선 무조건 사측 편’이라는 공식이 떠돌고 있습니다. 반면에 노동자에 대한 우호적 발언은 ‘금기’로 여겨집니다. 지망생들이 알아서 ‘자기검열’을 하는 것이죠. 바른 소리를 하기 위해서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편에 서는 일이 이 바닥에선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지망생 중 한 명인 저도 막상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탈락을 경험하니 두려워집니다.

사회에도 이런 ‘편 가르기’는 여전합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밀양 송전탑 사태, 세월호 사건부터 올해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고카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의 발언까지.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좌’든 ‘우’든 낙인부터 찍고 보는 것이 습관이 된 사회입니다. 사회구성원의 의견을 알아보기 위한 다수결이나 설문조사가 반대파 색출과 비판대상을 구체화하는 용도로 변질된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얼마 전 방영된 <추적 60분>의 ‘부당해고’편에선 대법원의 부당해고 판결 후 복직 명령이 내려졌는데도 수 년 째 복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전해줬습니다. 그들이 해고된 이유는 노조에 가입했거나 사측에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복직을 하더라도 좌천을 당해 따돌림을 받고 심한 감시를 견디지 못해 자살을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법으로도 바로잡을 수 없는 사측의 횡포 앞에서 어쩌면 노동자 편을 드는 것이 무모해보이기도 합니다.

‘미움 받을 용기’가 35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라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타인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픈 사회구성원들의 갈증을 방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앞 날’을 쥐고 흔드는 사람들에게도 미움 받는 것을 서슴지 않고, 또 그런 권리를 보장해주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회원님들도 끝까지 소신을 지키는 한 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