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10-30 17:01
[70호] 여는 글 - 회색인에게 인권이란
 글쓴이 : 경화
조회 : 9,888  

오문완 l 공동대표

1970 년대 말, 유신체제가 마지막 발악을 하던 시절, 대학생으로 살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하기야 누군들 편했겠냐만) 법대생들은 세 갈래로 자기 길을 살아간 것 같다. 체제에 순응하면서 출세의 길로 나간 친구들(물론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체제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적극적인 행동파), 체제에 반대하며 체제 전복을 위해 소위 재야로 투신한 또 다른 적극 행동파,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회색인(경계인). 경계인을 청소년기의 현상, 소위 아노미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모든 이론은 단순화가 장점이면서 또 커다란 단점, 한계이기도 하다.
경계인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세 번째 부류다. 세상이 잘못 굴러간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바꾸자고 나서지도 못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촌놈으로 아버님의 말씀―데모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을 거역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체제 속으로 들어가기는 양심이 찔리고. 그래서 술 먹고 당구 치고 (자기가 좋아하는)책에 파묻힌 나날을 보냈다.(이것 역시 또 다른 변명?) 적당히 데모도 해가면서.

35년이 흐른 지금 세 부류의 친구들은 다들 자기 나름의 삶을 살아간다. 체제파는 체제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체제 속에서 잘 먹고 잘 산다. 반체제파는 부침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사회의 중추 구실을 하고 있다. 회색파는 딱히 내세울 것은 없지만 사회 구석구석에서 그럭저럭 먹고 살고 있다. 다 자기 나름의 길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길은 옳고 어느 길은 틀렸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회색파에 끌리는 것은 내 자신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을 위한 변명을 하나는 해두고 싶다. 적어도 이들은 (공지영 식으로 말하자면)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는 않았다. 장삼이사(張三李四)로서의 삶이란 게 이 정도면 족하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지나친 얘기일까.
하지만 국가 폭력 앞에 왜소한 존재였다는 회한은 든다. 법학도라면 적어도 사회가 잘못 가고 있을 때 ‘잘못’이라고는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이미 19세기 후반에 루돌프 폰 예링은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불법을 저지르지 말라는 계명보다 불법을 감수하지 말라는 게 앞서는 계명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 스스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서, 이제 학생들한테는 그렇게 살라고 가르친다. 나도 이제는 불법을 감수하지 말라는 첫 계명을 지키고 싶다. 나한테 가해지는 불법에 항거할 때 나도 남한테 불법을 저지르지 않게 된다는 단순한 이치를 깨닫는 데 이리도 긴 세월이 흐른 셈이다.

이 얘기를 엘리노어 루스벨트 버전으로, 인권의 시각으로 바꾸어 얘기하면 이렇게 된다. 도대체 보편적 인권이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까? 작은 곳에서,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곳에서부터 모든 남녀노소가 공평한 정의, 기회균등, 차별 없는 존엄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작은 곳에서부터 인권이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면 그 어떤 곳에서도 의미를 지닐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자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상은 밥이 곧 한울(하늘)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 낮은 곳, 작은 곳, 가까운 곳으로부터의 인권이 번져 이 사회를, 이 나라를, 전 지구를, 아니 우주 전체를 인권이 넘치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 아닐까. 너무 거창한 것을 말하지 말고 작은 얘기를 하자. 장석남의 <번짐>이라는 시가 이러한 이치를 노래한다.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 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