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7-08 09:42
[67호] 회원 글- 백문불여일견
 글쓴이 : 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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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섬균 l 인 턴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나 벌써 인턴을 종료할 때가 되었습니다. 끝날 무렵이 되니 많은 분들에게 “인턴을 하면서 무엇을 배웠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항상 그런 질문을 들으면 많이 배우긴 한 것 같은 데 딱히 답을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항상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이 질문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도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니 인턴을 하면서 얻은 것은 머릿속의 지식보다는 가슴으로 느낀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되지 않은 일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 가장 많이 생각이 나는 것은 얼마 전 밀양에 방문했던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밀양에서의 경험을 말해보고자 합니다.

6월 11일 아침 저는 매 주말마다 방문했던 115번 농성장으로 갔습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경찰들이 길목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들의 눈을 피해 마을 주민들만 아는 길로 농성장을 가야 했습니다. 농성장에는 수많은 연대자들과 주민들이 앞으로 있을 집행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주민들의 모습에서는 긴장감과 결연함이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 끝까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경찰관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수녀님, 연대자들과 손을 잡으니 맞잡은 그 손에서 주체할 수 없는 떨림이 느껴졌습니다. 경찰들의 너무도 일사분란하고 잘 훈련된 모습은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저는 집행이 시작되자마자 여러 명에게 너무도 순식간에 끌려 나갔습니다. 너무도 어이없고 무기력하게 끌려 온 제 자신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너무도 원망했습니다. 농성장 주위는 할머니들의 울음소리와 절규가 산 전체에서 울리 듯 했습니다. 집행을 시작한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농성장 주위를 감싸고 있던 연대자들과 수녀님들도 벌써 끌려나와 수많은 경찰들의 스크럼 속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울며 소리치는 할머니들을 무력으로 끌어내는 여경들을 보았습니다. 경찰들에게 아무리 소리치고 지적해도 경찰들은 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인권감시단 역할로 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감시할 수 있는 인권은 115번 농성장에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순식간에 4년동안 살아왔던 우리의 집(농성장)은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 현장에 있으면서, 할매들의 울음과 절규 속에서 왜인지 몰라도 5.18 광주민주화 항쟁이 생각났습니다. 민주화항쟁 때의 계엄군들과 행정대집행 때의 경찰들이 오버랩되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기억하게 될 그들은 계엄군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우리는 슬픈 역사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며 “어쩔 수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한 것이다.”라고 변명을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국가권력은 개인이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강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민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야하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끝없는 자아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할머니들의 절규 속에서의 경찰들의 웃음과 집행이 끝난 후 승리의 브이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좀비처럼 명령에 따라 할머니들을 힘으로 끌어내고, 자신의 상관의 말이 아니라면 쳐다보지도 않는 그들을 보면서 정말 이건 잘못 됐다고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경찰들의 존재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인권을 지키는 일이라는 오완호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맞습니다. 경찰들의 업무는 강도나 도둑을 잡는 일에 그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국가는 힘이 없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보호하기 위해서, 즉 인권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존재이유인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짓밟는 그들을 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밀양에서의 일들을 생각하면 가슴속이 불덩이를 삼킨 듯합니다. 제가 인턴을 하면서 배운 가장 큰 것은 이런 ‘뜨거움’이라 생각합니다. 책으로 사실관계나 이론은 얼마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안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가슴속의 뜨거움이 없는 앎은 쓸모가 없을뿐더러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역으로 앎 없는 뜨거움 역시 허세에 불과하겠지요. 인턴을 정리하면서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을 많이 생각합니다. 옛말에 그른 것 하나 없다더니 정말 그런가봅니다. 6개월 동안 많이 보다가 갑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