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6-13 15:03
[66호] 인권 포커스 - 국가의 존재이유
 글쓴이 : 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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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존재이유


김창원 l 운영위원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2007년 부분수정이 되었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위 구절이 또렷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고 지금도 ‘국기에 대한 맹세’라는 단어가 나오면 거침없이 한군데도 걸림이 없이 술술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
국민교육헌장의 첫 구절이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으니,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함을 당연히 여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조국의 부름에 한 몸 던진 사람들을 보며 가슴 뭉클했고, 기꺼이 고사리 꺾어 모아둔 돈을 털어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한 성금을 냈다. 교문을 들어설 때 학교 중앙에 위치한 태극기를 보면서 가슴에 손을 올릴 때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나도 국가에 공헌했다는 자부심에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아무런 바람도 없었고, 대가도 없었다. 그저 국가가 존재하고 있고, 내가 거기에 보탬이 되는 것만으로 뿌듯했다. 국가가 있어야 내가 있다고 믿었기에.....

몸에 배어있는 국가주의는 대학시절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그리고 그 혼란은 아직도 지속된다. 몸속 깊숙이 배어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지워지지 않듯이...

고2아들을 둔 민간 잠수사 이광욱 씨가 세월호 침몰현장에서 구조작업에 참여했다가 돌아가셨다. 자신의 아이와 같은 또래들의 죽음을 보며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는 더 이상 거론이 여지가 없다. 나 역시 같은 또래의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겪은 심적 아픔들이 있었기에....

그런데 이광욱 씨가 친구를 설득하다 던졌다던 “국가에 대한 반역”이라는 말이 가슴에 아리게 박힌다.
세월호 사고를 접하면서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라는 질문의 정점으로 치닫고 있을 때조차, 순결한 국민은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는 학습으로 체득된 무의식의 언어가 표출된다.

국가(國家) 없는 민(民민)은 존재할 수 있으나 (民)이 없는 국가(國家)는 존재할 수 없음을 안지 수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내 안에 켜켜이 쌓여있는 국가주의의 찌꺼기는 ‘국가에 대한 기대’를 유지하고 있다.

민(民)이 주인(主人)인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라면, 국가의 운영책임을 진 사람들은 ‘민(民)으로부터 위임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을 해주세요!”라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을 하세요!”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는 자신의 아이가 국가의 의무 방기로 목숨을 잃었음에도, 그 책임의 정점에 있는 사람에게 “우리 아이 살려 주세요”라며 무릎을 꿇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6.4 지방선거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저기서 공약들이 쏟아진다. ‘이거 해드리겠습니다. 저거 해 주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해내라, 저거 해내라’는 소리는 듣기가 힘들다.

우리가 행사하는 투표에는 거대한 힘이 있고,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희망과 기대도 있지만, 심판과 징계의 의미도 있다. 살펴봄과 걸러냄의 미학도 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침해받지 않고 행사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도 깃들어 한다.

부디 이번 투표현장에서는 자신의 요구에 기반하여 ‘민(民)이 있기에 국가(國家)가 존재함’을 잊지 말고, 당당히 요구하고 선택하길 빈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바로 ‘민(民)의 요구를 수용하고 이행하는데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