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 없는 그 날을 위해
최진석 l 3기 인턴
Barrier free. 회원님은 이 단어를 알고 있는가. 배리어프리는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이다. 1974년 국제연합 장애인생활환경전문가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에 관한 보고서가 나오면서 건축학 분야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스웨덴·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휠체어를 탄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일반인과 다름없이 편하게 살 수 있게 하자는 뜻에서 주택이나 공공시설을 지을 때 문턱을 없애자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예전에는 단순히 건축물의 문턱을 없애자는 의미로 쓰였지만 요즘은 ‘배리어프리 영화제’ 등 신체에 장애가 있는 분들이 영화를 보기 편하도록 내레이션이나 자막을 달아주는 운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몇 년 사이 배리어프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많은 정책과 제도적 지원이 생겨났다. 정부 차원의 노력 중에서는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BF인증제도)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장애인, 노인 등이 교통수단, 건축물 등을 접근 이용, 이동하는데 불편이 없는 생활환경의 구축 및 조성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로 한국장애인개발원,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인증을 한다. 도시 지방자치 단체장, 소유자, 관리자, 건축주, 시공자에게 신청이 자격이 있다.
안철수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다수의 정치인들이 이 제도에 관심을 가지고 BF인증을 ‘의무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선거철이 다가오자 이런 선언들이 마치 유행처럼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진주시의 경우는 배리어프리를 선언했으나 선언한지 오래 되지 않아서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럼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한국장애인개발원에 의하면 2008년 시행된 BF인증제도는 2013년 5월까지 공공기관 인증건수는 55건이지만, 민간기관의 인증 건수는 6건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말은,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국민들에게는 와 닿지 않았다는 뜻이다. 언론의 객관적인 분석에 의하면 수수료는 높지만 별다른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간기관의 인증이 저조한 이유가 단지 이것 때문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옆 나라 일본만 해도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복지가 굉장히 발전한 상태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작년 겨울 일본으로 여행을 갔을 때 하루 종일 바닥만 쳐다보고 다니기 바빴다. 농담이 아니다. 대부분의 건물에 턱이 없다. 술집을 들어가도 턱 대신 경사로가 있다. 일본을 비롯하여 선진국들이 이렇게 발전하게 된 이유가 단지 혜택이 많아서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미국에서는 배리어프리 교육이 매우 성행해 어린이집에서도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의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휠체어를 탄 아이 인형 등을 놀이에 이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장애를 주제로 한 그림책이 이미 하나의 시장으로 자리를 굳혔고 가정이나 어린이집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고 한다. 이런 교육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건축가가 되고 건물주가 되고 공공기관의 책임자가 된다면 장애인과 노인이 이용하기 불편한 건물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 뻔하지 않은가. 어릴 적부터 인권감수성을 길러온 덕분이다.
회원님은 내가 아직 BF인증제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좋은 제도가 민간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혜택’과 ‘이익’이라는 단어에 치이고 짓눌리는 현실은 우리 교육환경이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작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인권운동연대 인턴 활동을 하면서 ‘찾아가는 인권교육’을 하러 다녔다. 중, 고등학교로 가면 모든 학생들이 인권에 대한 수업은 처음이라고 한다. 많아봐야 학기당 2시간이 전부인 터무니없이 부족한 인권교육을 받고, 남은 시간들을 오로지 대학과 취업에 목매달고 살아온 아이들이 건축가가 되고 건물주가 되고 공공기관의 책임자가 된다면 BF인증제도를 이익의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않을까.
정부는,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BF인증제도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인증 의무화 법안을 만들고 혜택을 더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인권감수성을 길러주는 것이 이 제도를 활성화시키는 제대로 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지금은 인권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을지라도 부모들이 가정에서 인권감수성을 길러주도록 노력한다면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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