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1-06 13:49
[57호] 인권 포커스 - 비가 와서 철탑 위 까치집을 식혀줬으면...
 글쓴이 : 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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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철탑 위 까치집을 식혀줬으면...



최민식 l 상임대표

정말 덥습니다. 보름만 더 있으면 300일입니다. 이 폭염 속, 철탑에 의지한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법원 판결 이행하라”며 고공농성을 이어온 시간입니다. 혹한기를 걱정하던 때가 까마득합니다.

며칠 전 희망버스가 다녀갔습니다. 가고 나니 난리가 났습니다. ‘절망버스’ ‘폭력버스’ ‘시위버스’ 보수 언론의 적개심 가득한 보도를 시작으로 청와대가 나서자 검?경은 물론 울산시장까지 나서서 폭력버스 엄단 운운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현대차 비정규직은 불법 파견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판결이 난 지도 3년이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대법 판결도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신규채용안을 제시하면서 또 다른 갈등 요인을 만드는 등 꼼수 부리며 비정규직 당사자들은 물론 대법원 판결마저 농락하고 있습니다. 이럴 진 데, 그동안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어디 갔다 이제 와서 ‘희망’을 폭력으로 매도할까요. 저 높은 철탑 위의 목숨 건 농성을 외면하면서 법치를 외치는 그들은 누구?

현대차희망버스는 서울 희망버스기획단에서 기획 했고, 울산에서는 현장이 있는 곳이니 ‘불법파견대책위와 자발적 참여단체나 개인’이 ‘희망버스준비팀’을 가동했습니다. 무대 설치와 음향, 화장실, 노약자와 어린이를 위한 숙소, 장애인 숙소, 어린이놀이방, 의무실 등을 함께 준비했습니다. 또한 각 시민단체에 티켓을 판매해 기금을 모았습니다. 폭력시위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희망버스는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차는 펜스를 두르고 컨테이너로 담장을 쌓고 용역을 앞세워 물대포와 소화기를 분사했습니다.


어제는 통장 대상 인권교육 때문에 동구에 다녀왔습니다. 통장이란 신분에 처음 뵙는 분들이라 준비를 많이 하고 갔다가 다음 얘기만 하고 왔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회의 여러 갈등들을 보고 접한다. 기자와 대중들은 그런 사건을 접할 때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가, 누구의 잘못인가에 대해 판단하게 되는데, 이 단계에서 ‘양비론’이 자주 등장한다. 양비론은 한가지 사안에 대해 찬성론과 반대론이 있다면 둘 다 나쁘다는 식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이다. 여기에 양비론의 좋은 예가 있다.
힘 센 아이가 폭력을 행사하며 힘 약한 아이의 사탕을 계속 빼앗아 먹는다. 하루는 계속된 폭력과 갈취에 지친 힘 약한 아이가 참다못해 힘 센 아이를 한 대 때리며 저항했다. 그런데 이를 본 선생님이 둘 다 폭력을 사용했으니 똑같이 잘못했다며 혼내는 경우이다. 때로 양비론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
최근 현대자동차 공장 앞에 거대한 컨테이너 박스들이 성처럼 쌓아올려졌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희망버스가 도착했다고 한다. 그들의 연대에 박수를 보내는 쪽이 있는 반면, 시위대가 폭력적이라며 욕하는 쪽도 있다.
또는 후자 쪽의 입장에서 쓰인 기사를 읽고 양비론을 펼치는 이도 있다. 당신이 어느 쪽의 입장을 지지하는가는 상관없지만, 섣불리 입장을 정하기 전에 먼저 폭력을 행사하며 사탕을 뺐던 힘 센 아이가 누구인지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글은 울산매일에 효정고 하영광군이 기고한 글입니다. 교육시간을 기다리면서 신문꾸러미를 무심히 넘기다 시선이 멈춰 읽게 되었습니다. 통장님들 얼굴을 보는 순간 이 글이 떠올라 인권 교육은 이 내용이 되었습니다.

현대차와 검·경이 그리고 못된 언론이, 못난 정치꾼들이 희망버스를 폭력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울산에서 10년 동안 비정규직에게 가해진 현대차의 폭력과 야만을 목도했던 사람들은 현대차의 불법파견이 해결될 때까지 저항은 권리라 여깁니다.

현대차는 담벼락을 겹으로 쌓을 것이 아니라 불법파견 비정규직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사법기관과 위정자들은 대법판결조차 지키지 않는 현대차를 처벌하고 ‘법치’를 얘기하는 것이 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주) 철탑고공농성 296일 8월8일 오후 1시 두 노동자는 농성을 해제하고 또 다른 저항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무덥고 습도마저 높아 많은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시기입니다. 아직 장마전선은 멀리 있나 봅니다. 그래도 전쟁을 기념해야하는 6월은 무거운 우비가 되어 나의 삶을 짓누르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