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3-03 23:26
[182호] 인권 포커스 Ⅰ -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라!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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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라!

박현옥


‘늘봄학교? 저녁이 되어도 엄마 아빠를 늘~~ 못 봄!’
작년 서이초 사건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매주 토요일 국회 앞에서 열린 교사집회에서 한 초등학교 교사가 늘봄학교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하겠다며 던진 말이다. 국회 앞에 모인 30만에 가까운 교사들은 이 발언에 크게 공감하며 박수를 보냈다. 서글픈 감정이 앞서고 씁쓸했다.

아이들은 주 양육자인 부모와 함께 생활하면서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애착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아이들이 부모님과 같이 생활하면서,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교사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직접 경험한다. 그래서 우리 교사들은 졸속적으로 강행되고 있는 늘봄학교에 대해 깊은 우려와 반대를 이어가고 있다.

우선 늘봄학교가 무엇이고, 어떻게 추진되어 왔고 향후 추진방향에 대해 간략히 들여다보자.
늘봄학교는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방과 후 교육과 돌봄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방학포함, 방학기간은 저녁 7시까지)
24년 1학기에는 전국의 6,175개의 초등학교 중 2,700곳, 2학기에는 모든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가 운영된다. 초 1학년 학생은 부모의 맞벌이·저소득층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2025년에는 초등 1~2학년, 2026년에는 초등학교 전 학년 누구나 대상이 된다. 늘봄학교는 기존의 초등학교 방과 후와 돌봄을 통합·개선한 단일체제로 운영된다.
늘봄학교가 기존의 초등돌봄교실과 방과후 학교를 포함하는 큰 틀인 것이다. 교사가 더 이상 돌봄과 방과 후 업무를 맡지 않고, 늘봄지원실을 운영하는 늘봄지원실장이 새롭게 채용되어 돌봄과 방과 후 업무를 총괄하게 된다. 따라서, 2025년도부터는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맡아오던 방과 후 부장이 사라지게 된다. 늘봄지원실 실무업무는 상반기엔 기간제 교원 2,250명, 하반기엔 공무직·단기계약직 등 6천명을 채용해 맡긴다. 교육부는 애초 제시한 7,657억 원 예산에 더해 4천억 원을 추가로 투입해 시·도교육청에 교부한다.
늘봄학교 운영으로 2024년 1학기부터는 매일 2시간씩 음악·한글·댄스·체육·미술·수학·과학 등의
맞춤형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저녁밥까지 늘봄학교 학생에겐 전액 지원한다. 하지만 강의개설도 강사채용도 사실 녹록치 않다. 강사를 구하지 못해 1~2학년 담임교사가 강사로 들어가는 사례가 많아 불만이 고조되었다는 시범교육청의 보고가 잇따랐다.

늘봄학교 시범신청에서 서울은 전체 학교 중 6%의 학교가 신청했고 울산은 121개교 중 6개 학교만 신청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24개교로 늘어난 것처럼 보도되었다.

이는 교육부가 꼼수를 부린 것으로, 늘봄학교 수에 초등돌봄교실 탈락자가 전혀 없어 희망하는 모든 1~2학년 학생이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있는 소규모 학교를 늘봄학교 운영 수에 넣은 것이다. 그에 따라 돌봄교실 탈락자가 없는 소규모 학교 18개교를 포함해 24개교에서 실시되는 것으로 보도된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시기 여성 경력의 단절, 초저출생으로 인한 학령인구의 뚜렷한 감소세, 사교육 격차에 따른 교육 양극화 심화에 대해 모두가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해소하고자 내놓은 정부의 늘봄학교 정책이라는 것이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의 최소화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최장 13시간을 학교에 머무르게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서 식사를 제공해서 하루 동안 단 한 번도 가족들과 식사를 하지 않게 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던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적 돌봄 정책이란 말인가? 모두가 가고 없는 밤 8시까지 학교에 남아 부모님을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은 헤아려 보았는가?

새 학기 시작이 일주일 정도 남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전국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강사채용도 공간마련도 되어 있지 않다. 강사채용이 안 되면 초1 담임교사나 기존의 교사들이 늘봄학교 강사로 들어가게 된다. 정규 교과수업에 늘봄학교 강사까지 뛰어야 하는 교사들의 피로도는 고스란히 다음날 아이들에게 전해질 것이고, 교육의 질은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늘봄교실의 배치인원을 20명 안팎으로 기준을 제시했지만, 이런 기준 자체를 없애고 교육청과 학교 자율에 맡겼다. 8천 명 넘는 기간제 교사·공무직 등 신규 인력 충원과 이들의 안정적인 처우 보장문제에 대한 대책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한 정책인 것이다. 이러한데도 총선을 앞두고 몰아붙이고 있는 늘봄학교는 교사들의 우려와 반대를 뒤로한 채 강행되고 있다.

초등돌봄교실 및 방과 후 학교 탈락으로 인한 돌봄과 방과 후 운영은 지자체가 되어야 한다. 지자체가 운영주체가 되어 공간 및 인력을 확보해 운영하고, 마을 곳곳에서 안전한 돌봄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요원한 문제처럼 이야기를 한다. 언제까지 우리 사회는 저렴하고 손쉬운 방법만을 고집할 것인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국가소멸까지 회자되는 재앙에 가까운 위기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정책시행에 즉각 나서야 한다.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 시간이 없다.

정부와 지자체는 교육청과 학교에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한 질 높은 공적 돌봄 시스템 구축에 나서라!

※ 박현옥 님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울산지부 지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