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2023 / 정리 : 배미란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 세상은 복잡하다. 사회문제 해결은 그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한다.”
사회적 약자의 차별 경험을 측정하기는 어렵다. 저자의 말처럼 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하기 때문이다. 늘 제대로 바라보려고 애쓰지만, 공기처럼 존재하는 차별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한국의 트랜스젠더에게 구직 과정에서 성별을 표시해야 하는 서류는 구직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는 것(19면)을, 한국에 살고 있는 네팔의 브라만 계급 유학생은 한국어는 잘 이해하지만, 달리트 계급 노동자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기에 그들의 차별 경험을 한국 연구진에 전달하기는 어렵다는 것(21면)을,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대중교통이라는 물리적 문턱을 힘겹게 넘어도 정작 본인이 가고 싶은 공간에는 여전히 문턱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23면)을 깨닫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럼에도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공부를 하여야 할까. 때때로 연구는 타인의 고통을 더욱 짓이기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의학자였던 새뮤얼 카트라이트는 1851년 논문에서 노예제를 두고 “돌봄이 필요한 노예(흑인)에게 도움이 되는 친절한 제도”로 표현하기도 했고(38면),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였던 에드워드 해먼드 클라크 교수는 1873년 본인의 저서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교육을 받는다면 그것은 여성의 몸에 생리학적 재난을 초래할 것”이라고 하며(41면),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동성애가 자연계의 법칙을 훼손하기 때문에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명시한다(43면). 이와 같이 “소수자에게서 인간의 자리를 빼앗았던 배제의 역사”를 뛰어넘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절대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49면)에서 벗어나 공기처럼 존재하는 차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찾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 그동안 본인이 이어온 연구를 바탕으로 다른 연구자와 활동가들과 연대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들과의 문답을 통해 숨겨진 더 많은 차별을 찾아내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자 한다.
예를 들어, 저자가 만난 하버드 대학교 보건대학원 데이비드 윌리엄스 교수는 ‘강화된 경계심 측정’ 설문조사를 통해 실제 차별을 경험했을 때뿐 아니라 차별을 경험할 것 같다는 우려만으로도 건강이 나빠질 수 있음을 제시하고(73면 이하), 흑인인 스스로를 소수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적극적 우대정책이 낳은 아기”라고 칭하면서,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은 불공정”이라고 꼬집는다(77면 이하). 한편,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우울증을 앓아온 당사자이기도 한 패트릭 코리건은 정신질환 낙인 해소를 위해서는 연구자의 목소리보다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필요함을 설명한다(84면 이하).
그리고 이 책에서는 주로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의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애초에 고통 받고 있는 타인의 존재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즉, 우리 사회에는 성소수자의 환경과 건강을 탐구할 수 있는 공공데이터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101면 이하), 고통받는 해고노동자의 곁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함께 고통받던 해고노동자의 아내가 있었으며(111면), 화려한 백화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오줌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현실(117면 이하)이 있음을 드러낸다.
나아가 소수자에게 찍혀있는 낙인을 거둬내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바뀌어야 하는 것은 동성애자들의 성적 지향이 아니라 스스로 전문가라 칭하면서 동성애자들에게 낙인을 찍어대는 사람들이라는 것(169면 이하)을, HIV 신규 감염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HIV 감염인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 나와 함께 할 수 있도록 돕는 것(179면 이하)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도움이 우리 사회에도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활동가들(김도현(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김지영(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대표))과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고자 노력한 저자의 무수한 흔적이 담겨있다. 마지막으로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한마디로 답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 글에서 다 담지 못한 많은 연구자와 활동가들(HIV 감염인에 대한 낙인 연구하는 보건학자 돈 오페라리오/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단식농성 활동가 미류, 종걸/정치권의 ‘합리적 주장’을 데이터로 반박하는 경제학자 리 배지트/미투 서지현 검사/영화 「공동정범」의 김일란 감독/유희경 시인)의 이야기까지를 다 확인하고 나면 알 수 있게 되는 한 가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타인의 고통에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도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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