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2-29 01:39
[180호] 인권 포커스 - 공감에서 만난 사건들로 살펴보는 한국의 이주 인권 실태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1,878  

공감에서 만난 사건들로 살펴보는 한국의 이주 인권 실태

김지림


한파 속에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새우 꺾기 고문을 당한 난민신청자,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사는 동네에서 매일매일 혐오 현수막을 마주하는 무슬림유학생들 등….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전업 공익변호사로 일하며 만난 사건들입니다.

어떻게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들여다보면, 개개인의 인종차별적 의도와 행위에 더하여 이러한 행위를 허용한 국가의 법・ 제도가 근본적인 원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울산인권운동연대와 울산대 법학과의 초청을 받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1. 한 겨울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

최저 영하 18도에 이르는 강추위로 인해 경기도 일대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졌었던 2020년 12월 20일, 한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이날 사망한 캄보디아 국적의 故 속헹씨는 2016년 고용허가제로 입국하여 4년간 한국의 농장에서 일을 해왔고, 체류기한 만료를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비행기 티켓까지 끊어놓은 상태였습니다. 부검결과 그녀의 사인은 ‘식도정맥류 파열’. 건강한 몸으로 코리안드림을 꿈꾸었던 청년이, 왜 4년 뒤 타국의 비닐하우스에서 서른의 나이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이주인권단체들은 입을 모아 그의 죽음은 ‘고용허가제의 허점이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꼬집습니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하기 위해 마련되어 2004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제도로, 고용주가 필요한 인력을 신청하면 정부가 한국에 취업비자를 받아 입국하는 외국인을 고용주에게 연결해주는 제도입니다. 애초에 고용주의 필요에 의해 한국에 들어와 고용주가 요구하는 대로 일하다 고용주의 의사에 따라 해고되면 출국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제’로 불릴 정도로 문제점이 많습니다.

농촌에 배정되어 일했던 고인은 입국하여 사망할 때까지 두 농장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 사업자등록이 되지 않은 농장들이었기 때문에, 고인은 (외국인노동자의 지역건강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었던 2019년 7월 전까지) 3년간 건강보험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또한, 고인이 사업주로부터 제공받아 사용해 온, 그리고 고인이 사망한 장소인 기숙사는 고인이 일하던 농장 한가운데 위치한 비닐하우스 간이 건물입니다. 이 비닐하우스 기숙사는 한파 주의보가 내려질 정도의 추위를 전혀 막을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을 기숙사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기존의 제도, 이런 기숙사를 제공하고도 기숙사비를 임금에서 제할 수 있게 한 고용노동부의 지침, 아무리 열악한 주거환경, 살인적인 근로조건이라도 사업주의 허락 없이는 일하는 곳을 바꿀 수 없는 고용허가제도 – 모두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겠습니다.

2. 화성외국인보호소 새우 꺾기 고문 사건

모로코 국적자인 피해자는 난민신청을 위해 한국에 오게 되어 난민신청자 자격으로 체류하던 중 체류자격 연장기한을 놓치는 등의 사유로 강제퇴거명령을 받아 즉시 외국인보호소에 보호되었습니다. 피해자는 보호소 내 열악한 처우, 병원 진료 요구 등에 관해서 화성외국인보호소 직원 및 법무부장관에 여러 차례 요구를 전달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고,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첫 3개월간 12차례, 전체 수용기간의 1/3가량을 독방에 구금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독방에 갇힌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항의를 하는 피해자에 대하여 화성 외국인보호소는 일명 ‘새우 꺾기’ 방식의 가혹 행위를 가하였습니다. 보호소 공무원들이 수갑을 사용하여 피해자의 손목을 포박하고, 포승을 이용하여 발목을 포박한 뒤 손목과 발목의 포박을 다시 포승으로 연결하여 바닥에 눕혔습니다. 피해자는 등 뒤로 손발이 모두 꺾인 자세로 배를 바닥에 댄 자세로 있어야 했으며, 머리에는 헬멧까지 씌워졌는데, CCTV를 보면 그 과정에서 보호소 직원들은 신청인의 몸 위로 올라타 목, 가슴, 다리 등 신체부위를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보호소는 항의를 하는 피해자에게 박스테이프, 케이블 타이 등 불법적인 도구까지 동원하여 피해자의 머리에 머리보호장비를 고정하기도 했습니다.

외국인보호소는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외국인이 본국으로 송환되기 전에 머무르도록 만들어진 곳으로 본국에서 박해가능성이 있어 돌아가지 못하는 난민신청자는 ‘무기한으로’ 외국인보호소에 지내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법률상 ‘(본국으로)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라는 제한만을 두고 있는 현 출입국관리법은 지난 3월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에 불합치된다는 결정을 받기도 할 만큼 위헌적인 법률이었습니다.
위헌적인 법률로 운영되는 외국인보호소 내에서, 보호외국인을 한 명의 존엄한 인간으로 바라보았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고문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후 공감을 비롯한 여러이주인권단체들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각종 형사사건, 국가배상사건까지 대응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3. 대구 무슬림 사원 건축 중단

경북대학교에 재학 중인 무슬림 학생들은 2014년부터 대학교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의 빌라촌에 공동으로 건물을 마련하여 예배를 보아오던 중, 2020년 9월 적법하게 건축허가를 받아 증축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이 무슬림 사원 공사에 민원을 제기하였고, 해당 탄원서가 접수된 당일 대구시 북구청은 “주민들의 정서불안 및 재산권 침해, 슬럼화 우려”를 이유로 공사를 중지할 것을 통보하였습니다. 또한, 이 사건 초기부터 이사건 부동산이 소재하는 대현동 일대에 ‘주민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무슬림 사원건립을 반대한다’라는 취지의 현수막이 유학생의 집 앞까지 게시되어 지속적으로 위화감을 조성하여 왔습니다.

북구청의 공사중지명령은 행정절차법에 따른 의견제시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적인 행정처분으로, 결국 법원에 의해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슬람에 대한 혐오성 현수막의 공식 허가주체는 북구청이었음에도 전면 철거 등 조치를 취하지 않아 현수막이 해당 일대를 가득 채우게 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대구시 북구청의 공사중지명령 및 혐오성 현수막 게시 방치는 평등권, 인간존엄성 및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차별적 행위에 해당합니다.

위에서 본 사례들에서 문제가 된 고용허가제, 국가기관에서 외국인에 대해 자행되는 고문, 종교ㆍ인종차별적 행정처분 모두 ‘국가기관’ 혹은 ‘법・제도’가 나서서 차별하여 심화된 사례들입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나라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차별이라니. 법적 대응을 통해 배상을 받고, 처벌을 받게 하고 제도를 바꾼다 하더라도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이주민에 대한 거부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울산인권운동연대의 초청을 받아 진행된 이번 울산대 법학과 학생 대상 강의 후, 한 학생이 다가와 “이 모든 게 정말 진짜 일어난 일이냐, 속에서 열불이 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은 이런 한 명 한 명의 생각과 의견이 모여 위에서 본 여러 정책이 바뀌고,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는 방식의 행정이 이루어지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라 믿습니다. 거대한 제도의 벽에 부딪히는 과정에 울산인권운동연대 활동가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 김지림 님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