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1-29 09:30
[179호] 시선 둘 - 성소수자의 시선으로 노동을 보다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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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의 시선으로 노동을 보다
김신연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는 희정 작가님의 책 제목이다. 퀴어란 단어는 익숙하지만 낯설다. 알고는 있지만 비성소수자들에겐 인지, 대처, 접근, 관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 책에 나오는 용어부터가 쉽지 않았다. 퀴어는 그냥 게이, 레즈비언, 트렌스젠더 정도의 용어로 나 나름의 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오해다. 퀘스처너리, 젠더퀴어, 에이섹슈얼…. 알고 이해해야 하는 용어도 쉽지 않다. (이런 용어가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 보는 것을 권장한다) 이런 용어가 나올 때마다 책을 몇 번이고 앞을 뒤적거리며 다시 정리한다. 나의 오해로 시작된 분야이니 제대로 정리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낯선 정체성이 나를 붙잡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작 흥미로운 지점은 누구도 자신의 보편적 정체성은 따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글의 인터뷰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힐 때 지방에 사는 사람만이 지방 출신임을 밝히며 장애인만이 자신이 장애인임을 밝힌다. -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이들은 서울이라는 지명을 언급하지 않고 비장애인은 굳이 자신을 비장애인이라고 밝히지 않는다. - 이렇듯 어떤 정체성은 생략된다. 그래서 보편적 특성이 특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퀴어라는 걸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그게 바로 차별이죠.”라고 말한다. 맞다. 나의 정체성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차별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 커밍아웃을 해도 사람들은 쉽게 잊는다. 한 사람이 커밍아웃했다. 직장의 특성상 그들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고 반향을 일으키지 않고 받아들여졌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한 동료(남자)가 동성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간다고 말하자 옆 동료가 무슨 남자끼리 영화를 보느냐며 혐오스럽다는 이야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한다. 커밍아웃을 한 본인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우리 옆에 누가 있는지 무심하다. 크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는 그들을 기억하고 살펴보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비성소수자들을 우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알고 있지만 비성소수자들이라고 표현하니 문장이 매끄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오류지만 바로잡지 못하는 나를 또 발견한다.)

노동을 이야기할 때 성정체성을 빼놓지 않을 수 없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기 나도 모르게 했던 당연한 역할들-여자가 더 잘할 것이라 기대되는 역할과 그 이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공식적인 업무분장에는 없지만, 여자들이 다 하고 있는 – 출근해서 사무실의 책상을 닦고 과일이 선물로 들어오면 깎아야 하는 등 – 이런 일들이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여자로 꾸미고 했던 역할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 되기도 하지만 성소수자에겐 더 근본적인 차별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이것들에 대한 비성소수자의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나와서 노동이라는 상황에서는 일하는 사람은 그 업무를 수행하는 하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만 남기를 기대한다.

이 밖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짐작하고 알고 있는 그대로의 노동현장이다. 비정규직, 생계형 아르바이트, 승진에서의 낙오, 해고의 위험성….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 그것은 비성소수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맞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들이 그들에게는 더 많이 더 빈번하게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마저 들게 하는 요인인 것이다. 그들이 정체성을 패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법의학자이자 성소수자인 켄지 요시노는 저서<커버링>에서 패싱을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되 타인에게 숨기고자 하는 욕구” 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벽장 속에 숨어 지내는 것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전기충격요법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거짓말이 아무리 힘들어도 굶어 죽는 것보다 낫다, 무대 의상을 입고 면접장으로 가야 한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삶이 거짓말로 켜켜이 쌓여 갈 때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워지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이 조금은 가벼워지도록 내가 그의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자. 그들을 마주할 때 지지하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완벽한 대응은 할 수 없다. 이럴 때 자책하기보다는 자신이 배움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성소수자 동료에게 상처가 될 만한 행동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가이드북-성소수자의 동료가 될 당 신에게 中)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당신이 모르는,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 김신연 님은 울산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인권교육센터 강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