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3-03 23:11
[182호] 시선 둘 - ‘인권교육 오르락내리락 고개 넘기’ 워크숍(02/06~02/07)을 다녀와서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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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오르락내리락 고개 넘기’ 워크숍(02/06~02/07)을 다녀와서

손현정


“다르게 쓰자! 말하자! 움직이자!” 2024년 인권교육 오르락내리락 고개 넘기 워크숍을 개최합니다. 라는 공지가 “띵동!”하며 텔레그램 전국인권교육활동가방에 올라왔다. 인권을 다르게 쓰고 말하는 법을 익히고픈 움직임을 통해 인권을 배우는 교육을 구성하고픈 이들을 위한 워크숍이라는 글을 본 순간 ‘어!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주말 동안 ‘갈까? 말까?’ 고민하다 신청을 하였더니 “죄송합니다. 마감되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난 새삼 놀랐다. ‘뭐야! 인권의 언어로 말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많은 인권교육활동가들이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것임을 알았다. 그 후 2차 앙코르 워크숍 공지가 올라오더니 곧 ‘마감’, 또 3차 앙코르 워크숍이 떴다. ‘와~ 서울에서 하는 인권교육이라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건가?’, 여러 가지 감정들을 품고 2차 워크숍에 참여하였다.

조금 가볍게 일상 속 우리가 잘못 쓰고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말이나 문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첫 시간부터 산산이 부서졌다.
첫날 S초 교사 사망 사건으로 포문을 열며 현 사회에서 왜? 교사 대 학생, 돌봄 제공자 대 이용 시민, 공무원 대 일반 시민 같은 대립 구도 프레임으로 균형 잃은 인권이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지를 물었을 때, 나의 머릿속은 까매졌다. 얼마 전까지도 이용 시민의 인권은 있는데 왜 돌봄 제공자의 인권은 없냐는 이야기에 ‘인권의 세 얼굴’로 풀었던 나였는데, 막상 이 질문에 난 큰 바위산을 마주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교육 속에서 조금이나마 그 길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일할 권리를 줬으니 열심히 일할 책임도 다해야 한다’ 에서 보듯이 열심히 일할 책임이 일할 권리를 압도할 경우, 그 일이란 것이 권리가 아닌 노예가 짊어진 저주가 된다. 일할 권리는 일하지 않을 권리와 함께일 때, 위험하고 가중한 일을 거부할 권리와 함께일 때 진정한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인권의 문법 속에 세계인권선언문 제28조, 제29조, 제30조에서 밝히고 있는 책임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를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며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권리 자체에 내재한 책임을 말할 때 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책임이 따르는가를 질문하기보다는 이 권리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또는 나(우리)는 나(타인)에게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를 질문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즉,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아닌 차별하지 않을 권리로 바꿔 말하는 것이다.
인권은 내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나의 선택은 타인의 존엄과 안녕에 영향을 끼친다. 즉,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면서도 서로를 해할 수도 있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성만으로 인권의 상호의존성을 말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돌보는 자와 돌봄을 받는 자와 같은 관계에서는 직접적인 인권의 상호의존이 존재한다. 따라서 현실에서 요양보호사에 대한 낮은 사회적 처우와 열악한 노동조건은 고령자를 마치 ‘폐기처분 직전의 존재’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돌봄 제공자의 존엄이 침해되는 가운데 이용 시민의 존엄이 같이 침해되는 것이다. 이러한 존엄의 상호의존이라는 관점에서 S초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면 교사가 학생 교육에 어려움이 있을 때, 보호자의 과도한 민원에 시달릴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사회적 지원)이 없었으므로 이러한 고립된 관계 속에서 독박 노동에 지친 이들은 그 분노를 자기가 돌보고 지원해야 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원망과 폭력으로 해소할 가능성이높아지며, 이로 인해 교사가 아동을 학대할 수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인권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에서 발견되는 존엄의 상호의존인 것이다’다.

참으로 가볍게 사용하는 맘충, 요린이, 노인 등을 어떤 말로 바꿔 쓸 수 있을까? 우리가 모르고 쓰고 있는 차별적인 말이 있다면 이번에 배워서 바르게 사용해 봐야지, 어떤 다양한 인권교육의 놀이법이 있을까? 라는 마음을 안고 올라갔던 워크숍은 나에게 거꾸로 더 많은 질문과 숙제를 돌려주는 교육이었다. 정말 인권교육은 오르락내리락 고개 넘기 같다.

사례 소개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시작된 학교 작업치료(Occupational Therapy)의 확산 과정을 담은 <학교에는 작업치료가 필요합니다>의 저자, 나카마 치호가 책에서 소개한 유치원에서 말을 전혀 하지 않고 친구들과 상호작용도 없는 나오토라는 어린이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나오토는 교실에 그저‘유령’처럼 존재하고 있었지만, 작업치료를 통해 청소하기, 바깥 놀이하기, 교실 활동 등에 함께하며 점차 유치원의 일원으로서 참여하는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중요했던 것은 나오토의 변화를 격려하고 나오토의 특성을 이해하는 친구들의 역할이었다. 나오토가 초등 6학년이 되었을 때, 새 담임 교사는 수업 중에 걸어 다니는 나오토를 보며 앉으라고 지시했다. 그때 나오토와 함께 오랜 시간을 함께했고 상호작용이 있었기에 나오토에 대해서만큼은 교사에 비해 더 전문가인 학생들이, “선생님, 나오토에게 배우게 하고 싶으세요? 아니면 앉게 하고 싶으세요?” 물었고, “당연히 배우게 하고 싶지.”라고 선생님이 대답했다.
이에 학생들은 “나오토는 저렇게 걸어 다니면 더 잘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배우게 하고 싶으시면 나오토가 수업 중에 걷는 것을 허락해주세요. 저희는 신경 쓰지 않아요”

# 참고자료: 오르락내리락 워크숍 중 ‘책임. 상호의존’을 다르게 말하기 / 인권센터 들, 개굴

※ 손현정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