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6-28 13:32
[114호] 시선 둘 - 어떤 길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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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길

김가연



나는 처음 ‘인권’이라는 분야에 발을 들이고 간간히 수업을 나가면서도 ‘인권운동가’와 ‘인권강사’는 조금 다른 분야의 것으로 생각했다. 그야말로 ‘강사’의 길만을 가고 싶어 했다. 가치관의 형성도 가치의 전달도 없이 ‘정보전달’의 개념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시간이 쌓이고 경험이 쌓이면서 내가 하는 일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예컨대 인권은 무엇인지 그 정의를 알도록 하는)일이 아니라 인권의 가치를 전하고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하며, 그 대상이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비로소 ‘인권강사’에서 ‘인권교육활동가’가 된 것이다.

‘인권교육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걸어가는 ‘길’에 대한 생각을 부쩍 많이 하고 있다. god가 부른 ‘길’이라는 노래는 수업을 끝내고 돌아가는 차 속에서 항상 듣는 음악이 되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가고 있는지, 이 길을 걸어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아직도 그 답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공감이 간다.

내가 생각하는 인권교육 활동가는 ‘프로 불편러’다. 불편을 정리하고 정의 할 것 같지만 사실 불편한 상황을 끊임없이 제기해야하는 역할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굳이 익숙함에서 깨어나게 하고 굳이 고개를 돌리게 해 다른 곳을 보게 만드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에게 ‘인권’은 딱히 반갑지 않은, 특정한 사회적 약자에게만 해당되는 좀 별난 그 어떤 것으로 이해되는 것 같다. 사실 그들이 싫어하거나 답답해하거나 거북스러워하는 것은 ‘인권’이 아닐 것이다. ‘인권교육’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길을 가기 전 사회복지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5년을 근무하였다. 그때의 나 또한 인권교육은 관심 밖의 일이었고, 뭔가 역차별적인 면이 많은 시간이라고 생각 했다. 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놓고 조심시키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인권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이 지점에서 앞으로 ‘인권교육’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인권을 알리고 옹호하고, 필요성을 일깨우려 교육을 진행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인권에 대한 반감을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 고민이 선행되어질 때비로소 인권이, 인권교육이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부분이 나의 ‘길’에 대한 고민을 더해준다.

사회복지사이면서(일상의 현장에서 사회적 약자와 함께 생활해 보았던) 인권교육활동가라는 사실은 인권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강점인 동시에 취약점 일 수 있다. 너무 가까운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강점임을 인식하되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 분야의 실상에 대해 모르는 활동가가 실수하고 가는 것 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알고 또 모르기에 그렇다. 보이는 것의 이면을 보고자 하는 노력이 그래서 더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권교육활동가’의 정의를 내려 보아야 한다. 아니, 적어도 강사활동을 하는 동안 계속된 재정립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거칠 때라야 비로소 ‘인권교육활동가로써의 가치관’이 성립된다.
그렇게 성립된 가치관 또한 수정이 불가피 할 것이다. 이 과정은 매우 혼란스러우며 고되고 지치는 일이다. 일종의 성장통 이리라. 나는 지금 성장 중에 있다. 아프다. 지뢰밭을 건너는 듯하다. 섹시한 뒤태 감상하며 마음 편히 따라오라는 든든하고 멋진 유시진 대위도 없이 지뢰밭을 건너려니 딱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많다.
많은 인권교육활동가가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위로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어디선가 어떤 사람이 같은 고민을 하며 그 ‘길’을 걷고 있다고, 그 시도로 인해 당장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의 도전 자체가 의미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내가 듣고 싶은 위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두에게 나의 수첩앞자리에 단단히 붙여놓은 <결심>을 드린다.

<결심> _흔글

스스로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전혀 후회하지 않을 일을 나는 해야겠다.
남들이 보는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남의 입에 오르는 걸 피하지 않으며
넌 안 될 거라는 소리에 무너지지 않게
난 될 거라는 행동을 보여 주도록.


※ 김가연님은 울산인권교육센터 운영위원이며, 인권교육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