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3-04 15:54
[122호] 시선 하나 - ‘서방님’은 누구의 남편일까?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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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은 누구의 남편일까?

박민선



“아가!” “네, 어머님!” “김서방!” “네, 장모님!”
“새언니!” “네, 아가씨!” “형부!” “응, 처제!”
올 명절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화두는 바로 남편과 아내의 가족들에게 쓰는 불평등한 호칭에 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시댁’과 ‘처가’, ‘도련님’과 ‘처남’, ‘어머님’과 ‘장모님’, ‘할머니’와 ‘외할머니’ 등의 호칭 불균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느낀다고 조사되었기 때문이다.

호칭은 무의식중에 사람들 머릿속에 파고들어 상대를 대하는 말과 태도를 달라지게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호칭을 사용할 때 ‘너’, ‘당신’ 이라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없게 되어 있다. 우리는 말을 하거나 누군가를 부를 때 상대와 나와의 관계에 맞는 호칭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런 호칭어가 말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불평등함을 느끼게 한다면 상대방과의 대화도 불편해지고 관계도 불편하고 어려워지게 된다.

결혼해서 시가에 갔을 때 ‘도련님’ 이라는 호칭으로 남편을 부르던 형님(남편 형의 아내)이 “이제 ‘서방님’이라고 불러야 하겠네요.” 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그냥 ‘~씨’ 라는 호칭으로 남편을 부르고 있었는데, 형님이 내 남편을 ‘서방님’이라고 부른다니, 무언가 이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형님의 입장에서도 얼마나 어색하고 불편했을지 짐작이 되기도 한다. 형님은 당시 자신의 남편을 ‘~아빠’로 부르고 있었는데, 남편도 아닌 시동생을 ‘서방님’이라고 부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시동생과의 대화가 불편해 졌을 테고, 호칭을 거의 쓰지 않다가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나중에는 시동생의 호칭도 ‘~아빠’ 로 부르게 되었다.

‘아가씨’와 ‘도련님’은 과거 종이 상전을 높여 부르던 호칭이었다. 아내는 남편의 형제자매를 나이에 관계없이 아가씨와 도련님 혹은 서방님으로 불러야 한다. 반면 남편은 아내의 형제를 처제, 처남, 처형이라고 부른다. ‘시부모’란 어원은 새롭게 받들어야 하는 부모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호칭으로, 아내와 시부모가 새로운 부모 자식관계를 맺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남편이 아내의 부모님을 호칭하는 ‘장인’, ‘장모’는 단순히 나이든 어르신을 부를 때 사용되는 말로 남편에게는 결혼으로 새로운 부모님이 생겼다는 의미의 호칭은 아니다. 남성 쪽은 ‘시댁媤宅’ 이라고 해서 ‘남의 집이나 가정의 높임말’로 사용 되고 있는 ‘댁’을 사용하고 여성 쪽은 ‘친정’ ‘처가妻家’ 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댁, 처댁 이나 시가, 처가로 둘이 평등한 호칭을 사용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를 전통이라는 이유로 아직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호칭 불균형에 따른 불평등은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아이들은 아빠쪽 집은 친가(親家)라고 하고 엄마 쪽 집은 외가(外家)라고 하고, 엄마의 부모님을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며 학교에서 배우고, 일상생활 속에서 익힌다.

우리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동해 할머니, 동해 할아버지, 서울 할머니, 서울 할아버지라고 구분되어 있었고, 호칭은 그냥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게 했었다.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 의문을 제기했다. 서울 할머니는 ‘외할머니’고 동해 할머니는 ‘친할머니’라고 배웠다고 한다. 아이에게 ‘바깥 외外’와 ‘친할 친親’의 의미가 불평등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었다. 먼 옛날에는 여자들이 결혼을 하면 ‘출가외인’이 되어 다른 집안사람이 되어야 했었다는 이야기를, 그래서 아직도 서류상으로 너는 서울할아버지보다 동해할아버지와 더 가깝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너는 외손주이고, 서류상 친손주보다는 먼 관계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외할아버지를 많이 좋아하는 어린아이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먼 옛날 여자와 남자가 평등하지 않았던 시대에 만들어진 호칭이고 지금은 고쳐나가야 할 것들이라는 장황한 설명까지 했다면 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주 옛날에는 모두 그렇게 불렀지만 이제는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로 부르면 된다고 간단히 설명해 주었고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접하게 되는 이런 다양한 불평등 구조는 단순히 호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통이라는 구실로 사회 전반에 걸쳐진 여러 성차별적인 문화는 어릴 때부터 성별 고정관념이나 성불평등한 의식을 무의식중에 아이들에게 심어주게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할 필요가 있다.
호칭이라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언어이다. 이런 호칭이 평등하지 않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사람들이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인권 의식 등과 맞지 않다면 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호칭이 불편한 사람에게 왜 불편한지를 물어보고 그 해결방법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오랜 세월 사용한 호칭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10년 가까이 ‘아가씨’, ‘도련님’이라고 부르다가 당장 ‘~~씨’ 라고 부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멈추어 있을 수만은 없다. 기성세대보다 먼저 행동으로 실천 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을 응원하고 동조해 주어야 한다. 아직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대화와 논의, 사회적 합의와 설득이 필요하겠지만,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탄생한 구시대적인 호칭을 단순히 전통이라서, 관습이라서,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할 전통은 차별 없이 인권 존중을 바탕으로 이어져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가족에 대한 인식변화와 성평등 인식의 확산으로 가족의 호칭도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음을 인지하고 이러한 변화에 대해 함께 논의해 나감으로써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때이다.


※ 박민선 님은 울산여성의 전화 부설 폭력예방교육센터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