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1-30 15:17
[121호] 시선 둘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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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김중국


우리는 흔히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한다. <화엄경>의 핵심사상으로 신라의 고승이자 대승불교의 큰 스승이신 원효에 의해 널리 알려진 말이다.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의상과 함께 당시 불교의 선진국이었던 당나라에 유학을 가던 길에 동굴에서 자던 중 마신 물이 해골인 것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에서 알려졌다.

“일체유심조”는 마음의 작용과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문제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을 말하며, 마음의 어떤 작용을 의미하는냐 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에서의 마음은 특정 사람의 생각을 의미하며 그 생각의 주체도 당연히 그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의지로 생각을 바꾸면 대상도 현상도 변하게 된다는 의미로 자기의 주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화엄경에서 의미하는 일체유심조의 마음은 특정 개인의 생각 혹은 의지와는 좀 다른 의미이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기보다 “사람이 인식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사람마다 가진 인식의 틀 즉 마음의 거울에 비쳐져서 드러나는 현상”이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의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가 개개인의 인식의 틀을 통해 작용하여 마음으로 들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혹은 현상은 바라보는 사람이 가진 인식의 틀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사람이 인식하는 모든 것들이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에 비추어져 재구성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똑같은 사물과 상황도 사람마다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람의 생각 혹은 의지가 아니라 사람마다 가진 마음의 거울이라는 인식의 틀이다. 문제는 인식의 틀인 마음의 거울은 그 사람의 생각에 따라 쉽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거울의 크기와 모양 등은 그 사람의 전생의 업과 현생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마음의 흔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이는 일시적인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마음의 거울을 좋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동양의 고전에서는 사람의 타고난 운명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방법으로 다음의 경우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積善(적선)을 많이 하라고 한다. 쉬운 말로 착한 일을 많이 하라는 말이다. 쌓여서 넘칠 정도로.. 불교와 기독교 등의 종교에서도 가장 강조하는 것이 자비와 사랑이다. 조선시대에도 적선을 많이 한 집안의 자손들이 잘된다 하여 이를 積善之家라 하여 모든 사람들의 본보기로 권장하였다. 결국 주위와 내 이웃에 선을 많이 베푸는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삶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매우 좋은 밑거름이 된다.

다음으로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스승을 만나라고 한다. 사람의 삶에서 훌륭한 스승과의 만남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세 번째는 명상의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성찰하는 시간을 매일 일정하게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럼으로써 삶이 더 풍요해지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며 주위를 배려하는 마음이 커지게 된다.

네 번째로 독서를 권한다. 고전을 비롯한 양서를 항상 접하는 것은 마음의 힘을 키우고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주역에도 인생에서 일이 풀리지 않고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는 활동량을 줄이고 독서를 하라고 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 환경과 사람과의 만남 즉 인연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출가자보다 속가에서 살면서 수행하기가 몇 배나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그런 사람과 환경을 피하는 것이 좋다.?

※ 김중국 님은 울산중구주민회 공동대표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