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2-31 11:49
[120호] 여는 글 - 다시 12월 그리고 1월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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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2월 그리고 1월

송혜림



세상에 무슨 일이 있던 시간은 잘 갑니다. 새해 달력 걸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 또다시 1월.. 이런 생각은 저만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올해 유행어 중 소확행이 단연 부각됩니다. 무슨 거대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일상에서의 잔잔하고 소박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안에 내 곁에 있다는 깨달음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애시당초 거창한 꿈 따위는 꾸지도 못한다는 절망감의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취업,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노후준비 등을 포기한 N포 세대가 소확행 이라는 트렌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아이가 커 가는 과정에서 부모로서 관심도 매번 달라집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육아’가 제 관심이었고, 그래서 공동육아에 참여했고 아이는 신나게 놀면서 잘 자랐을 겁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는 ‘교육’에 관심을 가졌고,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에 살고 싶은 사람들과 만나고 공부했는데요. 고민은 많이 했으나, 사실 적당한 방법을 아직 못 찾고 있습니다. 이제 아이는 군에 입대했고, 제 관심사는 단연 군생활이 되겠지요. 지금은, 지나가다 군인만 보면 괜히 마음이 짠해집니다. 아이는 아직 이등병인지라, 병장이나 상병을 보면 엄청 부럽기까지 합니다. 군대문화도 많이 변화되었다고 하니, 이제 아이가 첫 휴가를 받아 집에 오면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겠지요.

감옥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박노해 시인은 그러나 긴 독방감옥 기간 중 아이가 너무 갖고 싶어 수많은 상상을 하곤 했답니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라는 시집에는, 내가 부모로서 해 줄 것은 단 세 가지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째, 아이를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 둘째 안 되는 건 안된다를 새겨주는 일. 셋째,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

한 해가 가고 또 한해가 오는 지금, 누구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고 앞날을 상상하게 됩니다. 한 해가 끝나야 또 한해가 시작된다는 평범하고도 위대한 진리 앞에 서 있습니다.

지난해의 결심들, 얼마나 지켰고 또 얼마나 못 지켰는지, 계산이 나오지요. 덧없음을 알면서 우리는 또 새해 달력을 만지며, 뭔가를 계획하고 결심을 할 겁니다. 그러니, 우리도 내년 한 해, 꼭 해야 할 일 세 가지를 정해 보면 어떨까요? 소확행을 생각해 본다면, 아주 소박한 세 가지 바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어쨌든 연말연시니까, 절망보다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길이 끝나면’ (박노해)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걸어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울산인권운동연대 식구들 모두, 지난 한 해 각자의 자리에서 고생 많았지요.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한 해, 희망 가득차기를 기원합니다. 겨울이 깊어야 봄은 오는 것이니 이 겨울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 송혜림 님은 울산대학교 교수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