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9-03 16:15
[116호] 시선 하나 - 난징(南京) 기행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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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南京) 기행

윤경일



2018.8.10. 폭염이 이어지는 한국 땅을 뒤로 하고, 더 덥다는(실제 다습함) 중국 땅으로 떠났다. 떠나면서 걱정은 14호 태풍 ‘야기’가 귀국편 비행기를 막지는 않을까 하였는데, 13일 소멸되면서 무사히 14일 귀국할 수 있었다. 이 글을 빌어 무사히 귀국하게 도와주신 하늘에 감사를 드린다.
이번 기행은 난징의 대학살기념관을 견학하기 위한 기획에서 출발한 여행이다. 상하이를 거쳐 이동했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작은 건물, 그리고 작은 방들… 이곳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이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나라가 되었으니, 김구 선생이 바라시던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을까??

상하이는 인구 2,340만 명, 우리나라의 수도권급 도시라 할 수 있겠다. 지하철노선만 16개를 가지고 있는 거대도시이다. 거대도시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고속열차 상해홍교역이었다. 서울역의 최소 여섯 배 이상인 크기인데 더 놀라운 건 그 장소를 채우는 사람들이었다. 14억 인구대국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난징은 인구 810만 명, 중국의 10개 나라가 수도로 했었던 고도(古都)로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건설한 성벽은 그 높이가 어마어마해 일본애니메이션인 ‘진격의 거인’에서 나오는 성벽을 연상케 했다. 공자의 사당인 부자묘 또한 주말 사람들로 인산인해여서 뱃놀이 할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다음날 중화민국을 건국한 손문이 묻힌 중산릉을 둘러보았는데, 예약문제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플라타너스 비슷한 나무 산책길은 감탄을 자아냈다.
1937년 중일전쟁 때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무차별학살로 30만 명이 죽었다. 이를 추모하기 위한 난징대학살기념관은 작년 12월 13일에 80주년 추모식이 열리기도 했었다. 일제의 만행이 기록된 사진들과 매장 터를 발굴한 곳을 전시해 놓았는데 끔찍한 모습들이었다.
난징위안부기념관은 난징의 리지샹 옛 위안소를 밝혀내고 난징시정부의 투자를 받아 정비하였다고 하는데, 총통부 길 건너 바로 앞이란 것이 더 놀라웠다. 폐관시간을 맞추지 못해 내부견학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총통부 옆의 1912거리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로 우리나라에서도 벌이고 있는 도시재생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귀국하기 위해 상하이로 돌아와 동방명주를 올라가려고 했었는데 역시나 매표소 앞의 거대한 인파에 접었고, 황푸강 건너편 와이탄의 야경은 상하이의 최고의 볼거리였다.

이번 여행에서 힘든 것은 더위와 함께 걷는 것이었지만, 더 힘든 것은 식사였다. 중국 특유의 향채, 고수가 입에 안 맞는 것도 있었지만 산초로 범벅된 국수 등 특이한 맛은 참 식사 때마다 고역이었다. 다만 마지막 저녁이었던 상해에서 동북음식(우리나라 중국집 메뉴랑 비슷)덕에 포만감을 한번 느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여행은 즐거운 것이다. 식사를 제대로 못해도 동행한 사람들과 기울이는 한잔의 정취에 여행지의 밤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편의점에서 백주(白酒)를 사실 때 H9은 정말 피하시라. 끝까지 못 먹은 술은 처음이다. T6를 권한다.


※ 윤경일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