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3-29 18:35
[123호] 여는 글 - 가치 있는 죽음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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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죽음


이현숙


얼마 전 서울에 살고 있는 절친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오후에 울산 가니깐 만나자고 하였다. 친구는 대학 시절부터 서울로 가서 현재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친구의 어머니는 울산에서 혼자 살고 계셨다.

친구는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셨기 때문에 자주 어머니를 뵈러 왔다. 한 달 전에 어머니 병세가 악화되어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나는 친구가 울산에 오면, 자주 만나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 날도 친구는 어머니에게 병문안 갈 겸해서 나를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난 친구 전화를 받고 다음날 저녁에 친구와 만나서 식사도 하고, 커피도 한 잔 할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하였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친구는 요양병원으로 가기 위하여 서둘러 울산으로 왔다. 어머니는 84세의 연세로 몇 년 동안 집에서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하다가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입원한지 딱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난 서둘러 부고를 동창들에게 알리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친구 어머니는 남편 없이 평생을 홀로 딸을 키우셨다. 경제적 곤란으로 어머니는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딸의 학비, 생활비를 마련하셨다. 지독하게 가난한 친구는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절대로 가난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보통의 가정에서 자란 나보다 훨씬 부유하게 보였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하나밖에 없는 딸을 위하여 많은 것을 희생하신 분이었다. 덕분에 친구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현재까지 많은 것을 나름 누리면서 생활해왔다.
친구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장례식장이 울산이 아닌 양산부산대학교병원이었다. 게다가 2일장이었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10년 전에 가족의 동의를 받아서 시신기증신청을 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울산지역과 가장 가까운 병원에 시신기증이 가능한 곳인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 기증을 하셨으므로 장례식을 이 대학에서 하였다. 시신을 모시지 않고 장례를 치르다보니 2일장을 치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지독하게 가난한 삶을 살고, 순탄하지 않은 세상에 내던져진 삶을 원망하지 않고 세상을 위하여 두려움도 아낌도 없이 당신의 육신을 내주셨다. 어머니의 숭고한 죽음을 보고 난 부끄러웠다. 난 아직도 망설인다. 세상을 마감하는 방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섭고 두렵다. 어차피 썩을 육신인데도,,,,아직 결정되지 않는다.

어머니! 어머니의 고귀한 뜻,,,,그리고 용기,,,,,,정말 존경합니다!

내 나이 오십이 훌쩍 넘다보니 이젠 삶을 어떻게 마감하면 좋을지.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그냥 나의 육신은 세상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그저 한줌의 흙이 된다. 나도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교육용으로 시신을 기증하거나, 불편한 사람들을 위하여 장기기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친구 어머니의 고귀한 죽음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가치 있는 죽음!

※ 이현숙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