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재판의 진정한 주체
최정학
검찰이 법원을 수사하고 판사를 기소하였다. 물론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본래 수사, 특히 강제수사는 원칙적으로 법원의 통제를 받아 이루어진다는 점에서(즉, 다시 말해 이 경우는 법원이 스스로를 수사하는 꼴이다) 또 이 수사의 배경이 법원이 재판을 거래 내지 흥정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려 했던 사안이라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면 ‘법의 권위’를 빌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법관 아닌가. 우리가 검사나 판사 개개인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 사회 법질서를 대표하고, 법이 허용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조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을 근거 지워주는 그 법질서를 유린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삼권분립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재판의 거래를 시도하였다니 정말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러나 어찌 생각해 보면 마냥 놀랄 일도 아니다.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가 써준 공소장을 그대로 읽어대던 사법부와 판사들을 기억한다. 어쩌면 법원은 예나 지금이나 법보다 앞선 권력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집단인지도 모른다. 물론 예전에는 강력한 철권통치 앞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라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스스로 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꼴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만큼 국민은 더 분통이 터지겠지만, 여하튼 민주화 이후 혹시나 법원에 어떤 역할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이 깨졌다는 면에서는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비판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문제는 상층 수뇌부의 몇몇 고위법관이지 대부분의 일선 판사들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법원 내의 관료제도, 즉 법관을 조직의 한 부품처럼 여기며 조직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는 재판을 이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법관 승진제도를 악용하는 법원의 권위주의 구조를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법원 내에 이를 둘러싼 갈등이 예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어쩌면 그 다툼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검찰의 법원 수사를 두고 시작된 이 대립은 앞으로 점점 격화될 것인데, 젊은 법관들로 이루어진 변화를 원하는 세력이 상대적으로 다수이며 장래에 점점 더 그 힘을 키워갈 것이라는 점에서 나는 법원 개혁을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 한 가지. 법원의 관료제도 타파나 사법부의 진정한 독립과 같은 시대의 개혁과제는 우리 사회의 최고 권력자, 즉 국민들의 지지 없이는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법원의 민주화를 원하는 소장 법관들은 아직은 상대적으로 약한 세력이다. 이전의 대법원이 그러하였듯이, 사법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멀어진다면 그동안 권력을 향유해 온 고위 법관들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자신들의 권한을 유지하려 들 것이다.
당장 검찰의 수사와 사법농단에 대한 재판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법원의 범죄를 어디까지 파헤칠 수 있느냐 또 이것이 법원의 어떤 판단을 받을 것이냐 하는 것은 우리 국민이 이를 얼마나 어디까지 원하느냐에 달려있다. 너무나도 자명한 말이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 최정학 님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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